[블록미디어 타로핀] 돈이 몰리는 곳엔 언제나 사기꾼들도 모였다. 금융시장이라고 다를 바 없기에 그들로 인해 온갖 기발한 사건과 사고가 터졌다. 그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쳤다. 사건 하나에 규제 하나, 사고 둘에 규제 들을 만들며 재발을 막아 온 게 작금의 금융시장이다.
코인의 시조새인 비트코인은 태생이 거래 당사자를 제외한 3자의 신뢰가 필요 없도록 만들어졌다. 속칭 말하는 탈중앙이다. 덕분에 코인판은 규제권에서 빗겨 난 채로 덩치를 키웠다. 규제가 없는 노다지 시장으로 사기꾼들이 집결했다.
사기꾼들에게 호구로 털려가던 코인러들은 소 잃고 뇌 약간씩 고쳐가며 암묵적 규칙을 만들었다. 토큰을 생성하면 무단으로 유통을 못 하도록 컨트랙트로 락을 걸고, 온체인상에서 구성원들끼리 투명하게 볼 수 있어 감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 코드 이즈 룰
절대적일거라 생각한 규칙에 금이 가기 시작한 시발점은 스캠 거래소의 창궐이었다. 거래소 사용자의 잔고를 털어가기 위한 자작 해킹과 기획파산이 이어졌다. 거래소의 사기 행각에 대응하겠다며 개발사가 코인 생성 컨트랙트에 토큰의 소각, 무제한 발행, 지정 주소의 동결 기능을 넣었다. 개발사가 너무 많은 권한을 갖는다며 우려의 소리도 있었지만, 사기꾼들의 지갑에 있는 토큰을 소각시키고 홀더들의 지갑에 토큰을 발행해 줄 때마다 우려는 잦아들었다. 그 후 홀더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전지전능한 토큰 관리자의 기능은 당연하다시피 기본 장착이 되었다.
컨트랙트로 토큰의 유통을 막는 봉인이 풀렸다. 온체인의 감시를 피해서 악용할 수 있다면 봉이 김선달 빙의가 가능해졌다. 자기 플젝에 관한 불리한 정보를 알리면 토큰을 동결시켜 제보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동결로 협박이 안 되는 비홀더의 진입을 막기 위해 커뮤니티는 폐쇄적으로 숨어들어 갔다.
유통 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토큰을 몰래 내다 판다. 거래소에서 눈치채고 입금을 막을 때까지 내다 판다. 홀더들의 잔고가 다 털려 더 이상 매수를 할 수 없을 때까지 내다 판다. 디파이가 없던 시절. 오로지 매도만을 위해 나온 플젝의 지상 최대의 목표는 거래소의 상장이었다.
# 리버스 ICO
사기꾼들은 스캠 코인을 들고 거래소 상장을 위한 거짓말을 남발했다. 단골 중국집의 배달원 사진을 가져다가 해외 글로벌 금융기업의 임원을 거친 팀원이라 포장했다. 대행업체를 통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금융의 허브에 사무실이 있다고 자랑했다. 살아생전 경력으론 입사지원서도 못 넣어봤던 대기업을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이런 야생의 스캠 정글을 팬티 한 장만 겨우 걸친 코인러가 홀로 헤쳐 나가기엔 너무 험난했다. 코인러는 지친 한 몸을 비빌 수 있는 언덕을 찾아다녔다. 플젝 개발사가 외부에 공개하기 힘든 핵심 정보를 받아 수 있는 VC의 정보력에 기댔다.
상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준을 통과하는 플젝만 상장시키는 거래소의 잣대를 믿었다. 이미 기성 시장에서 사업을 하면서 블록체인 사업으로 확장하는 기업의 실력을 믿었다. 이렇게 VC의 투자를 받고 거래소에 상장한 리버스 ICO는 개인 투자자에게 안전빵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건 없군요. 안전빵은 루나빔과 뽀글이빔을 맞은 내 잔고보다 더 빠르게 와장창 무너졌다. 기대와 달리 리버스 ICO는 망해가던 기업이 너덜너덜한 간판이라도 달려 있을 때 마지막 배팅으로 변질되었다. 토큰을 팔아서 기존 사업을 살리고 임원들 뒷주머니를 두둑이 채우는 역할로 쓰였다. 금융시장에서 구르며 배운 자본시장법을 너무도 잘 알기에 코인판에서 규제가 생기게 된 사건·사고를 그대로 재현할 뿐이었다.
# 홀더와 호구 사이
무법지대의 코인판은 양심과 체면만 버리면 리버스 ICO의 사짜들에겐 파라다이스였다. 기존 사업을 하면서 맺은 인맥을 팔아서 거래소에 상장시키니 토큰 팔아 나이스였다. 자기들 마음대로 토큰을 유통해서 매도했다. 자기네 카르텔에 들어오면 블록 검증자로 꼽아주고 보상 토큰으로 뒷주머니에 용돈을 꽂아줬다.
자기들이 유리할 땐 탈중앙 코인판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다, 불리해지면 중앙화의 화신으로 돌변했다. 답변하기 난처한 질문을 하면 커뮤니티에서 강퇴했다.
기업 이름에 속아서 투자했다가 잔고가 삭제되었다며 시위하면 경찰에 신고해서 끌어냈다. 유통 물량에 대한 의혹 제기를 하면 형사고발 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거래소에서 상장 유지가 힘들어지면 법원의 판사에게 기댔다.
일련의 과정은 홀더뿐만 아닌 코인러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처벌 없는 무법지대에서 자정작용이 불가능하게 뿌리를 뽑았다. 상장사의 이익만을 위해 블록체인을 악용하는 훌륭한 교보재로 훗날의 스캠과 미래의 사기꾼에게 무한한 꿈과 희망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응당 이런 플젝은 거래소에서 사라져야 한다. 홀더들에게도 나쁜 일만은 아닐 테다. 개발사가 홀더의 눈과 귀를 막고 기만하지 못하게 외부에서 막아줘야 진심으로 제대로 된 블록체인 사업의 진행이 가능하다.
계획한 로드맵은 달성 하지 못한 채, 계획한 유통량만 최대로 맞췄으니 문제없다는 토큰 팔이 사업이 원래 계획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초기 백서에 써놓은 대로, 거래소 상장을 위해 제출한 자료 대로만 사업을 하면 거래소의 상장 유무와 무관한 가치 평가를 받을 거다. 단순히 잔고가 토막 났으니 피해자라는 소리를 외치는 홀더는 되지 말자.
돈 날린 놈이 피해자라면, 가해자는 돈 번 놈일 테다. 홀더와 개발사는 서로 견제와 협조를 통해 발전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개발사의 꼭두각시 판에 놀아나는 건 홀더가 아니라 호구라 부르기로 약속하자.
*본 컬럼은 필자의 의견으로 블록미디어의 취재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