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원자재 가격 급등·미분양 급증·PF 자금경색
“연말이 최대 고비”…건설업계 PF발 줄도산 위기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올 연말이 건설업계의 최대 고비입니다.”
지난 5일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건설경기에 대한 뉴시스 취재진의 질문에 자금 수요가 몰리는 올 연말에 돌아올 어음만 수백억원대 이르기 때문에 팔 수 있는 건 다 팔고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지금은 생존하는 게 중요한 시기라 사업부지 매각 등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건설업계가 줄도산 부도 위기에 휩싸였다. 부동산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미분양 급증에 레고랜드발(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경색까지 겹치면서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자금 수요가 몰리는 연말을 앞두고 건설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치에 놓였다. 가파른 금리 인상 여파로 미분양 급증과 철근·콘크리트 등 원자잿값이 폭등하고,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경색까지 맞물리면서 건설경기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PF 부실 여파로 40여 곳의 건설사가 문을 닫은 건설사 줄도산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충남지역 종합건설업체 6위인 우석건설이 부도가 난 데 이어 경남 창원의 중견 종합건설업체 동원건설산업이 지난 25일과 28일 두 차례 도래한 총 22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동원건설산업은 창원 성산구 소재로 전국 도급순위 388위 경남지역 도급순위 18위다. 지난해 매출액은 500여억원 수준이다.
장기영 동원건설산업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PF대출이 막히고 준공을 마친 건물도 대출이 나오지 않는 상황 속에 시행사가 도산했다”며 “이로 인해 미수금 250억원이 생겼는데 대출이 안돼 연 금리 36% 사금융을 이용해 남은 대금을 지급하다 채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금리가 낮다 보니 증권사와 보험사, 저축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PF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금리가 꾸준히 인상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말까지 약 34조원 규모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이를 막지 못하면 건설사와 금융회사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부동산PF 위기 원인 진단과 정책적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국 건설 업체 1만 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응답한 40개 업체의 사업장 233곳 중 31곳(13.3%)의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공사가 지연된 사업장은 22곳(9.4%), 중단된 사업장은 9곳(3.9%)이었다.
공사가 지연 혹은 중단된 주된 이유로는 ‘PF 미실행’이 꼽혔다. 15개 업체가 5개 항목에 대해 복수 응답을 한 결과 PF 미실행이 가장 많은 66.7%의 응답률을 차지했다. 이어 공사비 인상 거부(60.0%), 자재 수급 곤란(40.0%), 사업 시행자 부도(13.3%), 수분양자 청약 해지(13.3%) 등의 순이었다.
공사가 지연 또는 중단된 사업장의 조기(1~2개월 내) 정상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가장 많은 44%가 ‘매우 낮음’이라고 답했으며 이어 보통(28%)과 낮음(22%), 높음(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6%가 정상화 가능성이 낮다고 답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미분양 급증으로 중도금과 잔금도 제때 들어오지 않고, PF도 사실상 막히면서 자금 흐름을 재점검하는 등 연말 자금 수요에 대비해 현금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얼마 전 부산의 사업부지를 매각했다”며 “현금 확보를 위해 급매로 내놓다 보니 시세의 70% 정도 수준에 팔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시장에선 이미 여러 건설사들의 부도설이 파다하고, 연말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한 건설사들이 연쇄 부도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불필요한 경비 지출 줄일기 위해 업무 차량 운행을 최소화하고, 구조조정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 미분양 급증도 자금 경색 위기를 키우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0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4만7217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4만1604가구) 대비 13.5%(5613가구) 증가한 수치로, 2019년 12월(4만7797가구) 이후 최대치다. 수도권은 7612가구로 전월보다 2.6%(201가구) 감소했지만, 지방이 3만9605가구로 전월보다 17.2%(5814가구) 증가했다.
서울의 미분양 주택은 866가구로 전월 대비 20.4%(147가구) 늘었다. 지난해 말(54가구)과 비교하면 16배 넘게 급증했다. 시·도별로 보면 대구(1만830가구)에서 미분양 물량이 가장 많았고, 이어 경북(6369가구), 경기(5080가구), 경남(4176가구) 순으로 집계됐다. 전북 지역 미분양 주택은 1383가구로 한 달 새 122.7%(762가구) 늘어 증가 폭이 가장 컸다. 또 악성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전국적으로 7077가구로, 전월보다 1.6%(122가구) 줄었으나, 서울은 210가구로 12.3%(23가구)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건설사들의 줄도산 위기를 막으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과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연말에 금리가 추가 인상되면 부동산시장이 더욱 얼어붙게 되고,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율이 오르면 금융권에서 PF 대출을 더 조이고,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커지고 일부 사업장의 부도 위험성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금리 인상과 원자잿값 급등, 분양시장 냉각 등 주택 정비사업 여건이 악화되고, 부동산 PF대출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건설사들의 줄도산 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과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한 부동산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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