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스탠리 최 기자] 밤이 되자 누군가 내 팔 위에 자신의 팔을 슬쩍 올린다. 어슴푸레 잠이 들었던 나는 몸에 뭐라도 기어다니는 느낌이 생생하게 들어 소스라치며 깨어난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 둘러보니 이곳은 그동안 머물렀던 세계적인 휴양도시 바하마의 초호화 저택이 아닌 조명이 꺼진 부모님 댁 소파였다.
‘그곳에선 천국이 따로 없을 정도로 즐거웠었지’. 밤이면 향락이 교차했던 그 도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 가택연금 상태로 이곳에 있고 내일이면 법정에 나가 심문을 받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졌다. 팔뚝을 만져보니 낮에 붙였던 우울증 패치가 그대로 만져져 안심이 됐다.
하긴 며칠 동안 그곳 교도소에 구금된 채 밤마다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끌던 회사는 이미 파산했고 나는 지금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뉴스를 보기 위해 리모콘을 집어들던 나에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이 떠올랐다.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캐치미 이프 유캔’의 주인공 ‘프랭크 코너스’는 17세의 미성년자였지만 남들을 잘도 속이는 귀신같은 재주를 가졌지. 순간적인 임기응변이 뛰어난 건 말할 것도 없고 항공사 부기장이 되었다가 얼마 뒤엔 의사가 되었다가 또 얼마 뒤엔 변호사가 되기도 했었고.’
프랭크 코너스가 진짜 실력 발휘를 하는 분야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수표 위조’. 그는 달인도 울고 갈 수표 위조 실력을 바탕으로 1960년대 후반 미국 전역을 누비며 무려 200만 달러가 넘는 위조 수표를 발행해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흠.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엄청난 금전적 사건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건 나랑 제법 비슷한 데가 있어.’
프랭크 코너스는 여러 번 그를 뒤쫓는 연방수사국(FBI) 금융사기조사국 요원 칼(karl)에게 잡힐 뻔 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았고 칼을 피해 엄마의 고향인 프랑스 작은 마을까지 도주해 그곳에서 유럽을 상대로 더 큰 위조 수표 사기극을 일삼았다.
‘주인공이 부모님의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나랑 비슷하군 그래. 하지만 나는 이미 연금 상태인데…’
신출귀몰하던 그는 결국 FBI에 붙잡혔고 12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한다. 그러던 중 감옥으로 그를 찾아온 FBI 요원 칼이 또 다른 위조 수표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코너스는 위조 수법을 간단히 해결한다.
그의 공로로 위조 수표 사건을 해결하게 된 FBI는 프랭크 코너스를 감옥에서 빼내 FBI에서 근무토록 했고 그가 12년의 수감을 마치자 FBI 공무원으로 임용했다. 그는 위조 수표 달인 답게 수 많은 위조 수표 범죄를 해결하고 그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나로선 12년형을 감당할 수 없어. 무죄를 받아야 해. 코너스는 FBI에 협조했어. 달인 답게 오히려 그들을 도와줬다고. 방법을 찾아야 해. 이 더러운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한담?’
# S가 써내려 간 시나리오 ‘캐치 미 이븐 이프 유 캔’
캘리포니아 집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나는 그 영화를 떠올리자 프랭크 코너스의 삶이 마치 내 삶의 데자뷰 같다는 생각에 전율했다.
불과 얼마전까지 암호화폐 업계를 쥐락펴락 했던 자신을 투영시킨 건 당연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밤 만은 나 자신을 디카프리오가 대신한 주인공과 동일시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실 내 사업이 3년만에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줄 몰랐다. 무명이던 시절 한국의 김치프리미엄을 이용한 차익 거래가 나에게 사업을 크게 벌일 기회를 만들어 주었지만 업계 사람들이 내 말을 이렇게나 따를 줄 몰랐다. 미국 언론들이 나를 인터뷰 하고 싶어 안달복달 했던 날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뉴욕의 그 매체는 어휴…
미국의 명문대학 졸업생이라는 점, 월스트리트의 작지만 이름있는 투자 기관에서 근무했다는 점 등은 모두 장점으로 작용했다. 좀 더 과장되게 얘기한들 다 믿어주는 그들이 있었기에 무슨 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과거도 떠올랐다. 각종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다들 되지도 않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고 있던 게 이 바닥 아니었나.
돈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투자한다고 하면 그들은 밤낮으로 굽신거렸고 내 손이 얼마나 오염되었는 지 가늠조차 할 수 없으면서 그들은 내 손을 덥석 잡았었지.
하지만 나는 지금 조금만 사회 경험이 더 있었더라면, 1%라도 주변 사람들을 주의하라는 말에 귀기울였더라면(순전히 자신을 위해서), 또래 말고 두루두루 사람을 만났더라면, 잘난 척을 덜 했더라면… 그렇다고 내가 엄청 후회하는 건 아니고 이 모든 게 지금은 아주 조금, 진짜 조금 후회된다.
나는 오직 이번 실패로 수세에 몰린 나 자신만을 생각한다.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동료들도 수모를 겪고 있다지만 그들은 어차피 모든 걸 내 책임으로 전가할 것이기에 조금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나를 배신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덮치고 있다.
인맥을 넓히면서 가장 신경썼던 것이 적어도 우리끼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밤낮으로 모든 걸 함께 즐기지 않았던가.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몸으로 섞이려 했잖아. 돈주머니를 공유하고 들어오고 나간 돈의 흐름이 어떻든 모두의 자산으로 받아들이고 공유할 사람들이 나에겐 필요했었지. 외곽에서도 나를 지원해줄 후원자가 필요했었어. 그래서 규제기관과 이런 저런 정당에도 엄청난 후원금을 냈잖아…
나는 분명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은 나만큼 똑똑하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그들은 내 지시에 따르긴 했지만 나를 대신해 꼼꼼히 회계 처리를 해줬어야 마땅했다. 온체인 데이터에 기록되지 못하는 거래들을 실제 대신 처리했으므로 모든 책임도 그들이 지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둘 나를 떠나가고 나를 배신하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내 정체를 알아버렸다. 머리는 좋지만 회계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거짓말에 능숙하고 법을 잘 아는 부모님께 기대어 죄를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사람들과 즐겁게 떠들고 아이디어 뿐인 생각을 입밖에 내뱉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걸 정리해 문제없이 처리하는 것은 잘 못한다는 것을.
아니, 그 모든 일을 내가 다 알아야 하고 모든 것을 내가 다 처리한다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2년만에 우리 회사의 자산이 얼마나 커졌는데 어떻게 그걸 다 나한테 기대한단 말인가.
하지만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영화를 떠올리면 이 집안에서 당장 FBI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머리털이 다시 곤두선다. 여기는 더 이상 그 아름답던 휴양도시의 낡은 교도소가 아닌데도 곁에서 자신을 쳐다보던 죄수들의 눈빛이 떠올라 다시금 몸서리가 쳐진다.
나는 끝까지 나를 철두철미한 사람으로 포장해야 한다. 나 자산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알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내일 나는 법정에 나가서 나에게 죄가 없다고 진술할 것이다. 나는 직원들을 철저하게 믿었고 그들에게 엄청난 급여를 줬으며, 세상이 아는 방식으로 적절한 회계처리를 하라고 했지만 그들이 실천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둘러대자.
고객 자금을 전용한 것도 아니라고 하자.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대출(lending)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실제 유명 업체들이 여전히 대출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말하자. 나는 그런 대출을 계열사에 한 것 뿐이며 제때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알다마다(Aldamada)의 전 CEO 잘못이라고 주장하자.
나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디카프리오를 봐라. 그가 주연한 코너스는 일정 기간 감옥에서 지내다 FBI와 협력해 업계의 최대 현안을 해결한 인물이 되지 않았나? 나도 업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니까 얼마든 협조할 수 있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심지어 규제기관의 고위급과도 가까운 나니까 반드시 그럴 것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프랭크 코너스는 (위조 지폐 문제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프랭크와 칼은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 ‘캐치 미 이프 유 캔’ 엔딩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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