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3000억원어치 외화 불법 해외송금
은행 차원의 증빙서류 심사, 점검 미비
320회 송금…추가 증빙자료 요청 안해
되레 담당했던 직원 포상까지 하기도
“외화 송금이 실적…제도적 문제 있다”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4조원대 외화 해외 불법 송금 일당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검찰이 이번 사건은 시중은행의 실적 위주 관행이 가져온 부작용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외화 송금이 은행의 실적으로 잡히면서, 외화 송금 사유나 증빙서류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8일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나욱진)와 서울본부세관 조사2국(국장 이민근)은 불법 해외송금 사건을 합동 수사해 주범 및 은행브로커 등 19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지난해 11월 기소한 피고인을 포함해 이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어간 이들은 총 20명이다. 이들 중 11명은 구속기소됐다. 해외로 도주한 1명은 지난 10일 지명수배됐다.
이들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8월 사이 허위 무역대금 명목으로 4조3000억원에 이르는 외화를 해외로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이렇게 송금한 돈으로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구매한 가상자산을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해 국내에서 비싸게 매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페이퍼컴퍼니인 송금업체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수억 내지 수백억원의 해외 송금을 반복하는 데도 국내 시중은행들이 이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외화 송금에는 은행 지점과 은행 본점이 모두 관여하는데, 송금신청서가 접수되는 은행 지점에서는 형식적인 사전 서류 심사만 진행되는 데다 사후 점검은 미비했다는 것이다. 전문 확인 및 수정 작업을 맡는 은행 본점에서도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외화송금 심사만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 배경에 시중은행의 실적 위주 관행이 있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일부 영업점이 외환 송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송금사유나 증빙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외화 송금은 은행 영업점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구조인데, 심사 과정에서 까다롭게 심사할 이유가 지점에는 없다”며 “그게 다 외환 실적이고 그에 따른 영업수익이 은행에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점포 별로 개인의 평점이나 승진 고과 같은 것과도 관련이 있어서, 은행 입장에서는 굳이 적극적으로 심사해 불법 해외 송금을 막아야 한다는 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한 시중은행 지점의 경우 5개월간 320여 회에 걸친 수상한 외화 송금 거래가 있었음에도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한 사실이 없었던 사례가 밝혀지기도 했다. 이 은행에서 ‘반도체 개발비’ 명목으로 송금된 외화는 1조4000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면서 외화송금을 담당했던 직원에게 포상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인들의 범행 기간 중 은행 본점에서 의심거래보고(STR)가 이뤄졌음에도, 영업점에 피드백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법 송금이 계속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수사기관에 해당 내용을 통보하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 파악한 은행은 총 9곳”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은행원을 공범으로 기소하지는 않았지만 제도적 문제가 있었음을 강조하며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연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wake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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