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한번 클릭만 하면 다음날 시골 소도시에 사는 어머니 집 앞에 생활물품이 배달되는 시대에 더 이상 금융과 비금융을 따로 원하는 고객은 없을 것이다.”
“금융의 디지털화와 영역간 경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지금 금융의 경쟁자는 누구일까. 이럴 때일수록 사용자 경험을 중심에 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과 같은 체계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금융위원회가 금산분리 제도 개선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흔들림 없는 금융안정, 내일을 여는 금융산업’이라는 주제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중요 추진업무 중 하나로 금산분리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보고했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금융회사)과 산업자본(비금융회사)이 결합하는 것을 제한하는 원칙을 말한다. 이에 따라 현재 산업자본은 은행 주식을 4% 초과해 소유하는 것이 금지(의결권 미행사시 10%까지)되며, 금융회사 역시 비금융회사 주식을 일정비율을 초과해 소유할 수 없다.
당초 이 규제는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디지털화·빅블러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는 현 금융환경에 맞지 않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업무보고 및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이어졌다. 혁신금융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허정윤 국민대 교수는 “나이키의 경쟁자는 닌텐도라는 말이 있다”며 “사용자가 야외에서 뛰어놀지, 집안에서 그냥 게임을 할 지에 따라 서비스의 선택이 결정된다는 것으로, 동일 시간을 서로 다른 업종이 경쟁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의 디지털화와 영역간 경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더 이상 금융과 비금융의 구분은 소비자에겐 중요하지 않다”며 “또 일상 속 모든 활동들이 금융과 연관돼 있다는 것은 금융 산업에는 굉장히 큰 기회로, 이럴 때일수록 사용자 경험을 중심에 둔 ‘디자인 씽킹’과 같은 체계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고석헌 신한금융지주 부사장도 “한번 클릭을 하면 다음날 시골 소도시에 있는 어머니 아파트 앞에 각종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이 배달되는 시대”라며 “앞으로는 더욱 고객들은 금융 따로, 비금융 따로를 원하지 않을 것 같다. 금융과 비금융이 연결과 확장됨으로써 고객의 효익이 높아지는 것이 금융의 모습이자 가야될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서비스의 디지털화, 빅테크 등의 금융분야 진출 확대 등 디지털 금융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환경에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금융산업 규율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김주현 위원장도 전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2023 뉴시스 금융 포럼’에서 불필요한 낡은 금융 규제는 과감하게 폐지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금융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핵심은 굉장히 빨리 발전하는 디지털첨단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제약되는 규제는 다 없애야 한다는 것”이라며 “금산분리로 인해 안된다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못하게 하는 모든 제도는 즉각 없애겠다는 것이 금융 디지털산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산업이 디지털화와 빅블러 등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부수업무 및 자회사 출자 규제를 손보기로 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비금융 업무의 범위를 법령에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3가지 방안을 제시했으며, 금융위는 올 1분기 중 한 가지 안을 택해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3가지 안은 ▲포지티브(열거주의) 리스트 확대 ▲네거티브(포괄주의)로 전환을 하면서 위험총량을 규제 ▲자회사 출자 네거티브화 및 부수업무 포지티브 리스트 확대 등이다. 포지티브는 부수업무, 자회사 출자가 가능한 업종을 열거하되, 기존에 허용된 업종 외에도 디지털 전환 관련 신규업종, 금융의 사회적 기여와 관련된 업종 등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네거티브는 제조·생산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전면 허용하되, 위험총량 한도(자회사 출자한도 등)를 설정해 비금융업 리스크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조만간 구체안이 확정되고 금산분리가 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 신한은행이 음식배달앱 ‘땡겨요’과 같이 은행과 보험·카드사 등 전통 금융과 생활밀착업종·부동산 등 타 분야간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날 업무보고에서도 금융위는 디지털 환경에 맞지 않는 금융규제 개편을 통해 디지털 금융으로의 전환과 금융·비금융 융복합 신상품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비금융업종 자회사 출자 또는 부수업무 영위 허용 등 과감한 금융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하고, 금융업을 영위하는 빅테크에 대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규율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는 방안도 보고했다. 신흥국에 신용정보·지급결제시스템 등 금융인프라 수출을 활성화하고, 인프라 수출에 연계한 금융회사의 동반 해외진출 유도할 계획이다. 해외진출 성공・실패사례 분석을 통한 해외진출 지원전략을 고도화하고, 핀테크 기업의 해외진출 전략에 맞는 탄력적 지원도 제공한다.
신진창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이날 업무보고 및 토론회에서 “싱가포르의 한 은행은 상업용 부동산이 필요한 중소기업을 위해 부동산 물색은 물론 필요자금 대출 계약 법률 자문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등 외국 은행들은 추세에 이러한 추세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며 “반면 아쉽게도 우리 금융회사들은 금융과 비금융간 엄격한 칸막이가 있는 낡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짚었다.
이어 “금융회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러한 낡은 규제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먼저 오프라인 아날로그 환경에서 만들어진 규제 체계를 온라인과 디지털 방식에 적합하도록 개선하고, 넓은 시장에서 자유로이 경쟁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의 비금융 업무를 대폭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은행이 비금융업을 무한 확장하는 것이 맞느냐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금융업권 관계부처 이해관계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상생의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이러한 사항을 종합해 상반기 중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법률 개정 등 후속 조치를 신속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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