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블록미디어는 디지털 대전환을 주창하고 있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하버드 통신’ 연재를 시작합니다. 박 전 장관은 1월부터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영선 전 장관이 미국 현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디지털 대전환’의 생생한 현장과 한국의 과제를 블록미디어 독자 여러분들께 직접 전달해 드립니다.
[블록미디어=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는 강의 말고도 포럼이 매일 매일 열린다. 여기에 초청된 펠로우(Fellow)들이 하는 포럼과 세계 각국의 정치인, 전문가들이 초청되어 글로벌 이슈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발표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다.
한마디로 정보전쟁의 각축장이라고 봐도 된다. 며칠전 반도체 문제를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대만에서온 젊은 정치인이자 핀테크와 블록체인 전문가 제이슨 휴(Jason Hsu)가 주최했다.
약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된 포럼에서 그는 TSMC 시각에서 본 반도체의 미래와 대만의 미래를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심도있게 설명했다. 요지는 이렇다.
- 반도체는 무기화되고 있다.(Semiconductor is weaponized)
- TSMC는 대만을 위한 보험과 같은 정책이다.
- 반도체 동맹(CHIP alliance 대만, 미국, 한국, 일본)의 미래가 앞으로 미중 경쟁의 핵심이 될 것이다.
특히 지정학적(Geopolitics)인 의미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학생들의 관심이 매우 뜨거웠고 질문도 빗발쳤다. 특이한 것은 인도에서온 학생들의 질문이 많았다는 것이다.
포럼 발표 내용 중에는 군사전략적으로 민감한 내용도 있었다. 일본에서 온 펠로우(이 중에는 해상 자위대 3성 장군 출신도 있다)들의 관심도 상당했다. TSMC가 일본에 공장을 세우고 특히 이미지 센서 분야를 소니와 함께 협업하기로 했으니 일본 반도체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일 게다.
일본에서 온 정치인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반도체 수급과 관련한 일본의 상황을 PT로 보여주면서 일본이 1985년 프라자 협정 이후 미국이 일본에 취한 반도체 수입 제한 조치 때문에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 틈새를 뚫고 들어간 것이 한국의 삼성이고 그간 30여년간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훈풍속에서 우리가 성장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시련이 다가 온 것이다.
미국이 1980년대 경제 2위 대국 일본을 견제하던 상황 속에서 그것이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해 왔던 것이라면 이제는 미국의 중국 견제 속에 한국의 상황이 녹녹치 않아 진 것이다.
한국인은 나말고 케네디스쿨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학생이 마지막에 정신이 번쩍 드는 질문을 했다.
“희토류를 비롯한 반도체 원재료를 중국 외의 곳에서 가져오는 게 공급망 안정에 중요하지 않겠냐, 그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떤가?”
자신감에 차 있던 발표자 대만의 제이슨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는 듯 한국의 정해건 학생 질문에 “당장의 답은 없다” 는 말로 포럼을 끝냈다.
포럼이 끝나고 뭔가 위기감이 느껴졌다.
지금 미국의 관심이 온통 중국전선에 가 있고 그 기회를 대만이 반도체라는 주제로 받아치고 있기는 하지만 반도체의 자존심 한국의 힘이 혹시나 약화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또한 우리도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은 대만처럼 중국을 완전 적대화 할 수 없으니, 삼성과 SK의 고민도 그 지점에 있을 거다.
때마침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 중국생산에 간접적으로 제동을 거는 법안이 이번주부터 실제 작동된다. 미국 상무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인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 지급 신청을 받는다. 보조금 신청이 시작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전 세계 반도체 회사의 보조금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28일부터 칩스법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며 “반도체 기업의 계획이 미국 정부의 국가 안보 목표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수령인 선정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몬도 장관은 “이 법안의 목적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아니며, 기업이 미국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투자하는 것은 국가 안보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러몬도 장관은 “인텔이 얼마를 받는지, 삼성전자가 얼마를 받을지 궁금할 것”이라며 “반도체 기업이 지급받는 보조금 액수는 실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좋게 말하면 대단히 세련된 방법으로, 비판적으로 보면 보조금으로 반도체를 무기화하는 정책이다.
함께 포럼에 참여했던 한국 학생에게 “약간 걱정 된다”고 얘기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니여요 우리도 할 수 있어요. 그동안 여기 학생들만 있고 한국 출신 교수나 시니어 펠로우(Senior fellow)가 없었던 공백이 있긴 하지만 이제 우리가 해야죠.“
학생의 대답에 용기가 났다고 할까? 위로가 되었다고 할까?
오일 이코노미 시대에는 원유가 전략 자산이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반도체가 전략 자산이고, ”무기화“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국회는 반도체법을 놓고 단순하게 “세금깎아주느냐, 마느냐” 관점에서 보고 있다. 미국은 다르다. 똑같은 세금공제, 즉 보조금을 가지고 한국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한다. 미국 정책 결정자들의 노련미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도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과 국회, 기업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면서 살얼음판같은 지금의 반도체 전쟁을 대처해 나가야 할텐데 말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게는 정말로 노련한 정책전문가가 필요하다. 자칫, 깊숙한 세련미 없이 모든 것을 쉽게 생각했다가 매우 힘들어질 수 있는 것이 지금 상황이다.
미국의 여론을 만들어가는 한 축인 이곳에서, 그리고 정보전쟁의 장이 매일 열리는 이곳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 본 칼럼은 저자의 트위터 연재 #백문일견-2023 17. #하버드리포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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