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재돌파 하고, 외국인 투자자금도 대거 이탈하는 등 금융 시장이 연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은 예상치를 상회한 물가에 최종 기준금리 수준이 6%에 이를 것이라 전망이 나오고 있는 등 한미 금리 격차가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역대 최대폭으로 벌어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4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이후 1300원을 돌파하더니, 27일에는 1323.0원에 마감하면서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29일(1326.6원) 이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최근 다시 강달러가 주춤하며 지난 3일 1301.6원에 마감하며 상승폭을 일부 되돌리고 있지만 여전히 1300원대의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발표된 미 고용시장이 탄탄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물가 지표도 시장 예상치보다 높게 나왔다. 물가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에 미국의 최종적인 기준금리 수준이 기존 시장 전망치인 5.25~5.5%를 넘어 6%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연초 형성됐던 올해 말 기준금리 인하 전망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선물 금리 시장 투자자들의 전망을 반영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5,6월에 이어 7월에도 금리를 올려 최종금리가 5.25~5.5% 이상 될 가능성이 89.8%로 나타났다. 한 달 전만 해도 미 정책금리가 5.5% 이상이 될 가능성을 1.5%로 봤으나 크게 높아진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미 연준 위원들이 제시한 올해 최종금리 중간값 5.0~5.25%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한은이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에서 동결하면서 미국(4.5~4.75%)과 한국의 정책금리 격차는 1.25%포인트로 유지됐지만 앞으로 한미 금리차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은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대두되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기준금리를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5%대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자니 경기 침체가 우려되고,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동결하거나 낮추자니 물가가 걱정되고 있어 한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시장 전망 중간값인 5.25~5.5%까지 올리고 한국은 동결할 경우 한미 금리차는 2.0%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국내 금리가 미국보다 낮게 유지되거나 격차가 벌어질 경우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본이 대거 유출되고, 원화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 환율 급등으로 인해 수입 물가가 오르고,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더 문제다.
그동안 한미 금리 역전폭이 최대로 벌어졌던 때는 2000년 5∼9월 기록한 1.50%포인트다. 한미 금리 역전폭이 1%포인트 이상 역전된 사례도 이 때와 2006년 5∼7월 두 차례에 불과하다.
2000년 5∼9월 당시에는 미국 경제가 IT 버블 붕괴로 침체국면에 진입하기 직전이었고, 2006년 5∼7월 역시 미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였다. 미 경제 불안 등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되기 시작했던 때였다. 미 경제가 현재도 침체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심각한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은 낮아 이 두 차례와는 차이가 있다
미 긴축 우려가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도 최근 다시 1320원을 돌파했고, 국내 국고채 3년물 금리도 3.8%를 다시 넘어서는 등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반면 기준금리를 올리면,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물가를 잡는데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질 수 있다. 한은은 지난달 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 성장률 종전 1.7%에서 1.6%로 0.1%포인트 낮춰 잡았다.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0.4%를 기록하는 등 2년 반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도체 수출 부진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돼 왔던 수출도 5개월 연속 감소했고, 무역적자도 1년째 지속되면서 올해 1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도 금리 인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4월 이후 매 금통위 회의 때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해오다가 이번에 동결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며 “이번 기준금리 동결을 ‘금리인상 기조가 끝났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 악화가 지속되고 있는 등 경기 침체가 우려되고 있어 추가 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이 3.5%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멈추고, 미국이 인상을 더 한다면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본 적 없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며 “하지만 미국과 달리 우리는 내수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중간 반도체 패권 등 정치적 이슈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수출 개선이 어렵고, 수출이 개선된다 해도 경기에 반영되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 한은이 한미 금리차 확대 우려에도 동결을 택한 것은 경기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인데 국내 경기 하강의 속도가 미국보다 빠르다면 경기로 인해 유발되는 인플레이션 억제도 미국보다 한국이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한미 금리차는 더 확대되기 때문에 4월 금통위에 대한 경계감은 2월 금통위보다 더 높을 것”이라며 “다음 금통위까지 환율의 변화와 자본유출 여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미 연준 금리 인상 경계감에 당분간 강달러와 높은 금리가 이어지는 등 시장 긴장감이 높게 유지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14일 발표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22일 발표되는 FOMC 결과 등에 따라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FOMC에서 공개되는 금리 점도표도 상향 조정 될 가능성이 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시장은 디스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반영해 4.75%까지 낮춰 반영했으나 2월 초 이후 경제 지표 서프라이즈로 현재 5.5%까지 빠르게 상향 조정됐고, 인플레이션을 안정 시키기 위해 일각에서는 최종 기준금리가 6%가 될 가능성까지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고용, 물가, 소비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예상보다 강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어 단기적으로 시장금리 상승 모멘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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