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2월 7.4% 하락…달러는 2.9% 절상
#원화 가치 하락 속도, 일본 보다 빨라
#미 긴축·무역 적자·내외 금리차 확대 등 영향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지난달 원화 가치 하락폭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 보다 높은 등 전세계 주요국 중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은 미 긴축에 따른 달러 강세 영향이 가장 크지만, 위안화·엔화 등 아시아 지역 통화 약세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상수지도 상반기까지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 원화에 약세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가 달러인덱스 절상 폭을 뛰어 넘는 등 과도한 수준이라며, 환율이 지난해 9월 기록했던 1400원 수준을 다시 돌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1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달 한 달 새 90.7원이나 급등했다. 지난 10일에는 1324.2원에 마감하면서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27일(1323.0원) 기록한 연고점을 경신했다. 지난해 11월 29일(1326.6원)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었다.
지난 달 한 달 동안 원화 가치는 7.36% 하락해 주요국 중 하락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2.85% 올랐다. 달러 절상폭 보다 원화 가치 절하폭이 2배 이상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 가치 하락은 전세계 주요국 중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 엔화 보다도 더 가파르다. 같은 기간 엔화는 4.69% 하락 해 원화 하락폭 보다 작았다. 영국 파운드(-2.47%), 유로화(-2.68%), 중국 위안화 (-2.93%), 캐나다 달러(-2.55%), 싱가포르 달러(-2.63%) 등 보다도 하락폭이 크다.
최근 원화 약세 원인의 원인은 크게 ▲미 고강도 긴축에 따른 달러 강세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 적자 지속 가능성 ▲위안화·엔화 등 아시아 통화 절하 ▲한·미 금리 역전과 자본유출 ▲개인투자자들의 해외주식 투자 재개 등이다.
최근 미국의 고용지표와 소비자물가(CPI) 지수 등 경제지표가 개선되면서 고강도 긴축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최근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최근의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더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만약 전체 경제지표가 더 빠른 긴축을 정당화하면 우리는 금리 인상 폭을 높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이런 관측이 힘을 싣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이 이번 달에도 기준금리를 0.5%표인트 올리는 등 빅스텝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미 연준이 이번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이 61.6%로 나타나는 등 일주일 전 28.4%와 비교해 큰 폭 높아졌다.
3월 FOMC 전에 나올 예정인 2월 비농업 고용과 소비자물가지수(CPI), 생산자물가지수(PPI), 소매판매 등 주요 지표가 전망치를 상회할 경우, 미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가능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가팔라 질 경우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더 높아지는 등 한미 내외 금리 역전폭이 확대될 수 있다. 한·미 금리 역전폭이 커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본이 대거 유출되고,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
현재 한국(3.5%)과 미국(연 4.50~4.75%)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1.25%포인트다. 하지만, 미국이 이번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스텝’을 시사하면서 한·미간 정책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빅스텝을 단행할 경우 내외 금리차는 이번 달 역대 최대 수준인 1.75%포인트로 벌어질 수 있다. 또 미국이 5월, 6월에도 0.25%포인트 씩 금리 인상을 할 가능성이 높아 다음달 한국이 금리를 올려도, 한미 금리차는 2.0%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최근에는 한미 금리 역전폭 확대로 인한 외국인 자금 유출도 원화 약세로 작용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은 지난해 12월부터 해외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순유출됐다. 지난해 12월 27억3000만 달러 순유출된 이후 올해 1월에도 52억9000만 달러 순유출 돼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과거 세 차례의 한미 금리 역전기에도 주식과 채권을 합한 전체 증권자금은 순유입 됐기 때문에 한미 금리 역전이 환율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내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도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원화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원화 약세가 주요국 보다 더 가파른 것은,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등 아시아 통화 약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가 수출 등에서 대 중국 의존도가 높다 보니 위안화 가치의 상승, 하락과 원화 가치가 거의 맞물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발표한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5.0% 내외로 시장 전망치 보다 낮게 제시되면서 경제 정책 실망감에 위안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역내 시장에서 위안화 대비 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달러당 6.96위안선까지 치솟으면서 ‘포치(破七)’인 7위안을 위협하고 있다. 달러·위안 환율 상승은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을 뜻한다.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 엔화 역시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날 기준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장중 136.95엔까지 올랐다. 엔화 환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엔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수익률 곡선 통제(YCC)를 조정하지 않기로 하는 등 금융완화 정책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원화가 엔화와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퇴임을 앞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10일(현지시간) 마지막 정책회의에 참석해 “완화정책은 일본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며 초완화적인 경기부양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엔화는 장중 달러당 136.95엔까지 오르는 등 약세를 보였다.
최근엔 무역수지가 역대 최대폭 적자를 기록하고, 경상수지도 상당기간 적자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월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126억5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1966년 무역 통계 작성 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월에는 53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등 1월보다 적자폭이 큰 폭 줄었으나 지난해 3월 이후 12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보였다. 12개월 연속 무역적자는 25년 만에 처음이다. 반도체 수출도 2월 전년동기대비 42.5% 감소하는 등 7개월 연속 역성장 했다.
또 한은에 따르면 1월 경상수지가 45억2000만 달러 적자를 보이는 등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상품수지가 74억6000만 달러 적자를 보이면서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고, 서비스수지도 32억7000만 달러 적자로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됐다. 반면, 해외법인으로부터의 배당금 송금이 늘면서 본원 소득수지는 63억8000만 달러 흑자를 보이는 등 흑자폭이 확대됐다.
한은은 무역적자가 개선되고는 있지만, 반도체 부진 등의 영향으로 수출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 상반기 중에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수출 기여도도 예전 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중국인 관광객 증가로 인한 서비스 수지 개선 효과도 아직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지난해 기준으로 경상수지 흑자의 77%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본원소득 수지의 흑자가 확대되고 있어 원화 가치 하락을 막는 역할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에 비해 원화 약세가 과도한 측면이 있는데, 이는 미 연준의 금리인상만 ‘트리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 중국 경제정책 실망감에 따른 위안화 약세, 일본과 미국 금리차확대로 인한 엔화 약세, 국내 무역 수지, 경상수지 적자 지속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1월 말 대비 미 달러인덱스 절상폭은 3.4%인데 같은 기간 원화는 6.8% 절하되는 등 원화가 달러의 움직임보다 과도하게 등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 달러 절상폭을 적용할 경우 원달러 환율 적정 수준은 1275원 내외”라고 말했다.
그는 “원화가 유독 취약한 것은 원화를 지탱할 고유 모멘텀이 약하기 때문으로 2월들어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수 흐름도 다소 약화되고 있어 취약성이 커질 수 있다”며 “경기 펀더멘털과 원화 변동성 등을 고려할 때 원달러 환율이 1350원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주호 국제금융센터 외한분석부장은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상품인 반도체 업종 부진으로 상방 압력이 높은 상황으로 평가된다”며 “다만, 반도체 하강 사이클 상승 전환 기대와 경상수지 중 본원소득수지가 증가하고 있는 점 등은 상승세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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