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글로벌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까지 위기에 몰리면서 금융사들에 대한 건전성 관리가 금융시장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내 은행들의 경우 자산 및 조달 구조 측면에서 비교적 안정성이 높아 SVB, CS 사태로 인한 직접적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가계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약한고리’가 터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위기감 어린 목소리가 높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16조5000억원으로 집계돼 1년 전 보다 14조6000억원 늘었다. 이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 가운데 은행이 30조8000억원, 보험·증권 등 비은행이 85조8000억원으로 대출 잔액의 73.6%가 제2금융권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경기가 활황을 이어가자 저축은행과 증권사 등 2금융권이 부동산PF 대출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이다.
특히 저축은행의 PF대출이 급격히 증가해 지난해 저축은행 상위 10개사의 부동산 PF대출이 4조5357억원에 달했다. PF 대출 연체율도 크게 올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연체율은 2.4%로, 2021년 말과 비교해 1.2%포인트 상승했다.
무엇보다 이번 금융불안을 야기한 SVB의 경우 자산이 고위험·고수익 분야에 집중된 가운데 예치자들이 동시에 인출을 요청하는 ‘뱅크런’이 발생해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커진 만큼, PF대출 등 고위험 부문에 자산이 쏠려 있는 국내 저축은행 등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금융권은 일반적으로 은행에 비해 유동성·자본력이 낮은 만큼, 부동산 경기 하강 등 충격이 발생하면 PF대출 건전성이 일시에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PF 부실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2금융권을 중심으로 예금자들이 예금을 대규모로 한꺼번에 인출하는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저축은행이 수익성 보완을 위해 매입한 유가증권의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도 잠재리스크 요인이다. SVB 사태의 경우에도 유동성 조달을 위한 보유 자산 매도 과정에서 평가손실 반영이 투자자 심리에 치명적이었다.
국내 저축은행 유가증권 보유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하며 지난해 3분기 5조5000억조원에 달했다. 2020년 3조1000억원 대비 77.8% 증가한 규모로, 전체 자산 증가율 48.4%를 크게 웃돈다. 채권뿐 아니라 최근 주가 부진으로 인한 유가증권 전반의 가격 하락 역시 잠재적 위험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글로벌은행부장은 “이번 SVB 사태에서 보듯이 단기간 내 급속히 상승한 금리환경,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의 잠재적 손실 등을 감안할 때 SVB와 비슷한 입장에 처한 중소은행들도 유사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며 “지난 리먼 사태에서도 글로벌 은행권 전반의 위기로 확산된 데는 당시 취약한 재무상황도 문제였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신뢰의 위기’가 작용했음을 감안시 향후 은행권 전반에 대한 신뢰도 변화 여부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한은도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수신 이탈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지난 3분기 수신 금리 인상을 통해 은행권 정기예금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9월에는 일시적으로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금리(1년, 3.77%)가 1998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은행 정기예금 금리(3.84%)를 밑돌기도 했다.
개별 저축은행이나 업권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될 경우 예금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거액 예금을 중심으로 이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5000만원을 초과하는 거액 예금 규모는 32조5000억원으로 전체예금의 27.4%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 “국내도 안심할 수 없어…취약부분 점검 강화해야”
이에 따라 정부와 시장 전문가들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등 국내 금융시장의 취약 부문을 연착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저축은행, 증권사 뿐 아니라 관련 시중은행, 건설사 등 산업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저축은행들은 높은 금리로 자금 조달하다 보니 고수익 낼 수 있는 PF대출 쪽에 대출이 많이 나와 있다”며 “그런데 금리 상승기에 연체가 되고 대출채권 회수가 안 돼 만약 한 저축은행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할 경우 관련된 다른 저축은행, 또 대출을 해준 시중은행들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수익은 미래에 발생하는데 지금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들을 약한 고리로 볼 수 있는데 SVB 사태도 이에 해당하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PF와 테크 기업들이 해당될 수 있다”며 “SVB 사태가 국내 시장에 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이러한 취약 고리들을 선제적으로 점검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부동산 PF 부실은 경제·금융 등 여러 부문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뿐 아니라,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보다 선제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이에 당국은 부동산 PF 부실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업장별 맞춤형 대응에 나섰다.
정상 사업장의 경우 차질 없이 끝까지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20조원 규모로 사업자 보증 등을 공급해 ‘브릿지론→본PF’ 전환을 지원, 증권사·건설사의 차환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사업성 우려 사업장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다음달 ‘PF 대주단’을 가동하고, 올 상반기 민간 자율의 사업재구조화에도 나선다.
부실우려 사업장은 시장 원리에 따른 매각·청산을 통해 새로운 사업 추진 주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 부동산 PF 리스크가 건설사·부동산신탁사로 파급되지 않도록 건설사 등에 대해 정책금융 공급규모를 28조4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밖에 경기대응완충자본과 스트레스완충자본 제도 등의 도입을 통해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앞서 발표한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을 위해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서지용 교수는 “은행들이 높은 위험자산 쪽으로 대출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연체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특히 단기간에 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킬 수 있는 부동산PF가 뇌관이 되지 않도록 좀 더 타이트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규제 수준을 웃도는 자본비율이나 PF대출 증가세가 멈춘 부분은 긍정적이나 거액예금 인출, 자산대비 단기화된 부채 구조 등을 고려 시 유동성 지표가 단기간에 악화될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며 “약한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속보는 블록미디어 텔레그램으로(클릭)
전문 기자가 요약 정리한 핫뉴스, 블록미디어 카카오 뷰(클릭)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