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 역전폭 1.5%p로 확대…22년래 최대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2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하면서 한·미 금리 격차는 다시 1.5%포인트로 확대됐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연내 금리동결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장에서는 미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한국은행이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23일 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미 연준은 21~22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종전 4.5~4.75%에서 4.75~5.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에 따라 한미간 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으로 1.5%포인트로 확대됐다. 이는 지난 2000년 5~10월(1.50%포인트) 이후 22년여 만에 최대 역전폭을 기록한 것이다. 연준이 5월에도 한 차례 더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어, 한미 금리 격차는 종전 역대 최대(1.5%포인트)를 넘어 1.75%포인트로 확대될 수 있다.
당초 연준은 고용 호조 등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으로 긴축 강도를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고강도 긴축으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터지는 등 은행 리스크가 커지면서 시장에서 예상했던 ‘베이비 스텝’을 단행했다.
FOMC 위원들의 향후 금리 인상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의 올해 말 금리 예상치(중간값)은 지난해 12월과 같은 5.1%로 나타났다. 이는 기준금리 목표범위로 보면 5~5.25%까지 올리겠다는 뜻으로 이번 긴축 사이클에서 올해 남은 기간 동안 한 차례만 추가 인상한다는 얘기다.
정책 결정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다소 완화’라는 문구가 삭제됐고, ‘지속적인 인상이 적절’을 ‘추가적인 정책 긴축(firming)이 적절할 수 있음’으로 대체했다. 또 ‘최근 사태가 가계 및 기업의 신용여건을 긴축시킬 것’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이날 FOMC 정례회의 직후 “최근 은행 부문 위기가 신용위축 등을 통해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금리인상 효과를 대체할 수 있다”며 “경제 방향이 불확실해 연내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금리 인상 중단 기대가 확대됐지만, 연내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시장에는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선물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5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61.2%,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38.8%에 달했다. 또, 연준이 연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97.7%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도 다음 달 달 11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한국식 ‘점도표’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두는 등 기대인플레 심리를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우리나라의 물가가 10개월 만에 4%대로 내려선 가운데 3월에는 기저효과로 상당폭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금리도 연일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등 상당폭 하락한 데다 원·달러 환율도 크게 낮아져 시장 전반의 불안도 완화되고 있다.
한은 금통위원들 상당수는 추가 금리인상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최근 공개된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 대다수가 향후 물가와 성장 추이, 금융시장 상황 등을 지켜보면서 추가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한 금통위원은 “주요국의 추가적 긴축에 따른 내외금리차 확대가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물가와 성장 추이, 금융시장 상황 등을 지켜보면서 추가 긴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밝혔다.
오는 5월 미국이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려 한미 금리차가 1.75%포인트가 되더라도 현재의 시장 흐름으로 볼 때 감내할 만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질 경우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또 원·달러 환율 상승해 수입 물가가 오를 경우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물가가 반등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한미 금리차 확대에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수준에서 움직이는 등 원화 약세 심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VB와 시그니처 은행 파산 이후 현재 추가적 ‘뱅크런’과 은행 파산 위험이 진정된 상태인데 이런 상태가 유지될 경우 연준은 5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인상한 후 금리인상 기조를 마무리 할 것으로 보인다”며 “당초 빅스텝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연준이 SVB 사태로 금리인상 보폭을 낮추면서 한국도 다음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에서 4월에 금리를 인상했다고 봤던 이유가 미 연준의 빅스텝 단행으로 인한 금리 격차로 인한 원화 약세, 수입물가 상승 때문이었는데 연준이 베이비스텝에 나서면서 우리나라의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은 물건너 봤다고 볼 수 있다”며 “연말로 갈수록 건설경기나 소비가 악화될 수 있어 앞으로도 추가 인상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이고 올해 4분기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허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점도표를 통해 미 연준이 제시한 터미널 레이트는 5.25%로 굳어지고 있는 등 연준의 통화긴축 종료가 가까워 졌다”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3.5%로 유지하더라도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이 최대 1.75%포인트로 생각할 수 있어 4월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 인상 부담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의 긴축강도가 낮아지면서 강달러 완화 기대가 커지고 있는 점은 한은 추가 긴축 우려를 낮추고 외국인 국고채 순매수 유입 기대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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