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성 자금’ 요구불예금 증가
예금금리 하락…투자 관망세
[서울=뉴시스]이주혜 기자 = #. 지난해 하반기 가입한 정기예금의 만기가 됐지만 A씨는 자금을 예금에 다시 넣지 않았다. 앞서 가입한 정기예금에 비해 금리가 부쩍 낮아졌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주식이나 가상자산에 투자하기에도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당분간 현금을 가지고 시장 흐름을 지켜보기로 했다.
예금금리가 하락하고 주식, 부동산 등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 속에 ‘현금’을 들고 있으려는 금융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5대 은행의 입출금통장에 넣어둔 돈이 두 달 사이 30조원 늘었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은 지난달 말 기준 619조2650억원으로 두 달 전(588조6031억원)보다 30조6619억원 증가했다.
요구불예금이란 입금과 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이다. 다만 금리는 연 0.1%대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요구불예금에 자금을 넣어둔 것은 사실상 현금을 들고 있는 셈이다.
가계와 기업 모두 ‘현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기업고객 위주의 MMDA 잔액은 2~3월 두 달간 10조2835억원 늘었다. 개인고객이 대다수인 MMDA 제외 입출금통장 잔액은 같은 기간 20조3784억원 불어났다.
예금금리가 연 3%대로 떨어진 데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 약세에 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 불확실성이 큰 데다 투자 적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금을 보유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에 요구불예금에 넣어두는 자금은 당분간 늘어날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동안은 요구불예금 증가가 이어질 것 같다”며 “가계도 기업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금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다 대출을 받아 투자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투자 적기가 왔을 때를 위해 현금을 들고 관망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시장금리 하락으로 예금금리가 떨어지면서 정기예금의 매력은 크게 줄었다.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요 정기예금(12개월) 상품 최고금리는 4일 기준 연 3.40~3.53%다. 연 5%대까지 올랐던 지난해 하반기는 물론이고 4%대에 근접한 한 달 전(3월7일 연 3.7~3.8%)보다도 낮다. 일부 은행의 경우 한국은행 기준금리(3.50%)보다도 예금금리가 낮은 ‘금리 역전’도 나타났다.
이에 만기가 도래한 정기예금을 재예치하지 않고 지켜보는 이들이 늘면서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05조3384억원으로 전월 대비 10조3622억원 감소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금리 하락으로 만기가 도래한 다음 다시 예금에 돈을 넣을 유인이 줄었다. 대기성 자금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일부 고객이 불안감에 2금융권 등에서 시중은행으로 자금을 옮긴 측면도 요구불예금 증가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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