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1일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3.5%에서 동결했다. 물가상승률이 4% 초반대로 낮아진 데다 지난해 4분기 우리 경제가 역성장 하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 이어 두 차례 연속 동결이다. 금통위는 앞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7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한은이 이번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2021년 8월부터 이어져 온 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끝났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게 됐다.
한은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물가가 4% 초반대로 낮아진 데다, 물가를 꺾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경기가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경기 둔화로 금융시장 충격이 커질 수 있고, 긴축적인 금융여건은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다. 물가 뿐 아니라 금융 안정도 함께 고려하는 유연한 통화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동안의 금리인상 효과와 이에 따른 경기 충격 정도를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도 지난해에는 물가에 집중됐던 것에서 이제는 성장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정부 정책 우선순위도 물가안정에서 경기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재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3월호에서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한국 경제가 경기 둔화 상황”이라며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상승세가 다소 둔화하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제조업 기업 심리 위축 등 경기 둔화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고물가, 고금리로 소비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돼 왔던 수출도 부진해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명분도 약해 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6% 감소한 551억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연속 감소한 것이다. 무역수지도 46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지난해 3월부터 13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민간소비와 수출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를 기록해 2020년 2분기(-3.0%) 이후 2년 반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도 역성장을 나타내면서 한국이 ‘기술적 침체’에 빠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 대출금리 인상, 대출규제 등으로 가계대출은 감소 전환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대출은 1년 전보다 7조8000억원 감소한 1749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연간 기준 가계대출이 감소 전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비자물가는 4% 초반대로 둔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목표수준을 상회하고 있는 데다 근원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은 추가 금리 인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으로 석유류가격 하락폭이 크게 확대 되면서 4.2%로 2개월 연속 4%대를 기록했다. 반면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4.0%로 전월 수준을 유지하면서 지난해 말 이후의 더딘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산유국의 추가 감산 소식에 국제유가 다시 들썩이고 있는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은 향후 통화정책 결정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산유국의 감산 소식이 전해진 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다시 돌파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등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한·미 금리차도 확대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한은의 동결 결정으로 미국과의 기준금리(4.75∼5.0%) 격차는 1.5%포인트로 유지됐다. 이는 2000년 10월 1.50%포인트 이후 가장 큰 금리 역전 폭이다. 미 고용시장이 여전히 견조한 모습을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다음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308%,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69.2%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미 금리차가 1.75%포인트로 벌어져 역대 최대로 확대될 수 있다.
한미 금리 역전폭이 확대되면 국내 증시와 채권 시장 등에서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자본이 유출될 수 있다. 자본유출로 인해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원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설 수 있고 이는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국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연내 금리 인하에 돌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내년 말 한은의 기준금리가 2.5%로 내려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총재는 지난 2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금리 동결 결정을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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