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James Jung 기자] “인질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인질범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준다고 해서 인질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법이 없다. 한 번 협상에 응하면 더 많은 인질범이 생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하면서 대내외에 천명한 규칙 중 하나라고 합니다. 좀 무시무시하죠. 아무리 그래도 자국민이 희생되면 어떻게 하려고.
고팍스는 인질입니다.
고팍스를 이용하는 고객 중에 ‘고파이’라는 코인 예치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돈을 돌려 받지 못하고 있죠. 고파이 예치 자금을 운용해준 제네시스가 FTX에 투자한 것이 묶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일어난 B&S 투자 실패 → 하루 인베스트 → 델리오로 이어지는 출금 정지와 똑같습니다.
경영이 어려워진 고팍스는 회사를 바이낸스에 넘깁니다. 고파이 자금을 상환하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바이낸스도 흔쾌히(?) 고파이 대금을 주기로 했죠. 우선 일부 대금을 돌려주고, 500억 원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고팍스의 가상자산사업자(VASP) 변경만 이뤄지면 고파이 투자자들은 나머지 돈을 받게 돼 있습니다. 대주주가 바뀌었으니 VASP 조건을 고쳐 고팍스가 신청하면 금융당국이 이를 승인해줘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이낸스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잇따라 제소를 당합니다. 그것도 자금세탁방지, 고객정보확인 등 금융 당국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에서 법을 위반했습니다.
바이낸스는 비슷한 이유로 캐나다에서 철수했고, 호주,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조사를 받고 있거나, 면허를 박탈당했습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이 바이낸스에 VASP를 내주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입니다.
고파이 고객을 위해서라도 VASP를 주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일단 VASP를 주고 나중에 관리감독을 하면 어떠냐는 거죠.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바이낸스가 한국에서 VASP를 받으면 앞서 있었던 자금세탁, 고객정보미확인 등의 허물이 다 덮이는 겁니다. 금융당국이 그걸 용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 국회에서 난리를 칠테니까요.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바이낸스는 어쨌든 법 위반으로 기소를 당한 상태입니다. 무죄를 받으면 그때 VASP를 다시 신청하라? 이 재판은 적어도 2년은 걸리는 싸움입니다.
고파이는 500억 원 짜리 인질입니다.
바이낸스 뜻대로 VASP를 내주면 면죄부를 주는 것이고, VASP를 끝까지 주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이 피해를 봅니다.
바이낸스도 급하기는 급했던 모양입니다. 본사에서 고팍스로 파견한 레온 풍을 경질하고 기존 경영진 중 한 명인 이중훈 부대표를 신임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바이낸스가 고팍스 경영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VASP를 달라는 것이죠.
우리나라 정부는 인질범과 협상을 할까요?
바이낸스가 한국 암호화폐 시장에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면 의외의 답이 나옵니다.
바이낸스는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VASP를 신청한 적이 없습니다. ‘무기한 선물’을 하고 싶은 한국 투자자들은 거의 대부분 바이낸스에 계좌가 있습니다. 만약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코인 파생상품을 취급한다면 바이낸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투자자들이 상당수 있을 겁니다.
바이낸스는 고팍스를 인수해서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 진출하는 동시에 선물 투자와 연계한 마케팅도 벌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암호화폐 현선물 영업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도죠.
레온 풍은 “오더북을 공유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있습니다. 막강한 바이낸스의 오더북과 고팍스의 주문을 뒤섞어 관리하면 국내 시장을 단숨에 압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레온 풍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정책 당국의 입법 취지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라”는 구두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레온 풍이 경질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이쯤 되면 답이 나왔습니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이 500억 원 고파이 채권을 공동 인수합니다. 고팍스는 알아서 살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대신 국내 거래소들도 암호화폐 무기한 선물을 허용해 달라고 금융당국에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허용해야 할 암호화폐 파생상품입니다. 막는다고, 하지 말라고 해서 문을 닫을 시장이 아닙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본인, 또는 그 아들이 암호화폐를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막을 수 없다면 열어야 합니다.
기왕에 열거라면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줘야죠. 국내 거래소들이 연대해서 고파이 고객 돈을 돌려주는 대신, 파생상품을 열어달라고 하는 겁니다. 바이낸스와 경쟁할 수 있게요.
VASP를 내주기도 그렇고, 안 내주기도 그렇고, 정책 당국 입장이 애매하다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먼저 나서서 제안을 해보는 겁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고파이 채권을 국내 거래소들이 나눠서 인수하겠다.”
이렇게 명분을 쌓으면, 금융당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주지 않을까요? ‘아’ 하면 ‘어’ 하고 알아 들어야겠죠.
500억 원이라는 돈이 크다면 크지만, 암호화폐 선물시장이 가져다 줄 이익을 생각해 보십시요. 시장 상황이 좋을 때 조 단위로 돈을 번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더 큰 시장을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돈입니다.
무엇보다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날 수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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