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블록미디어를 이끌고 있는 최창환입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사랑하는 중년의 아저씨랄까요. 4차 혁명이라고 하면 젊고 똑똑한 기술자들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관점만 바꿔도 ‘아! 기술이나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가는 과정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저는 < 최창환의 비트코인 오디세이>를 통해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를 미술, 인문학 관점에서 쉽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연재 중간에 궁금하거나 “나도 이야기할 게 많다!”는 분 있으시겠죠?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 레오나르도 다빈치,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비트코인
비트코인을 둘러싸고 세상이 시끄럽다. 암호화폐(가상통화)를 튤립 버블보다 심한 거품현상이라고 거품을 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법정화폐를 대체할 미래화폐라고 예찬하는 지지자도 있다.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진폭이 이처럼 큰 대상이 또 있었을까? 시각.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 사물을 정확히 보는 능력은 무척 중요하다. 사물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세상이 바뀌고 역사가 바뀐다. 시각의 예술인 미술을 예로 들어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파블로 피카소는 미술사에 획을 그은 거장들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르네상스의 최고 명작이다. 루브르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그림 앞에는 항상 인파가 넘친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뉴욕 현대미술관의 대표작중 하나다. 입체파의 대표작이다.
두 작품은 무척 다르다. 모나리자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살포시 흐르는 미소가 더욱 그렇다. 아비뇽의 처녀는 마치 퍼즐을 붙여 놓은 듯 하다. 등짝이 앞으로 나오고 얼굴 옆면과 앞면이 함께 그려져 있기도 하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혁명이고 파격이었다.
이처럼 다른 그림을 그렸지만, 두 거장의 고민은 같았다.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그려야 사물과 사람을 정확하게 표현할 지를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로 의미 있는 시각을 제공했기 때문에 두 작품은 세기의 명작으로 남은 것이다.
◆ 다빈치, 스푸마토 기법으로 완벽한 3차원 공간 재현
르네상스 이전 중세의 그림은 교회(성당) 중심으로 그려졌다. 신의 은총과 교리를 설명하는 수단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크게, 주변 사람들과 사물은 작게 그렸다. 원근법도 없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얼굴은 크게 그리고 신체는 작게 그렸다.
르네상스 작가들은 달랐다. 사물과 인간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다. 사람의 시각에 비치는 3차원 세상을 2차원 공간에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원근법, 소실점 같은 회화기법이 탄생했다. 지금은 당연한 원근법이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마찬가지다. 다빈치는 여기에 스푸마토기법을 창안해 모나리자의 미소를 만들었다. 색과 색, 물체와 공간 또는 물체간의 경계선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연기가 사라지 듯 부드럽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둘러싼 고민이 르네상스 정신이고 다빈치의 고민이다.
◆ 피카소 입체주의, 다각도의 시점에서 사물 재조합
피카소의 입체파는 다르다. 피카소는 눈에 보이는 게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 처녀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 진실인가? 앞면만 보이게 그리는 게 과연 옳은가? 피카소는 대상을 앞과 옆, 뒤의 여러시점으로 분해해 화폭에 담았다. 르네상스 이후 이어져 온 명암과 원근법을 버렸다.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옮겨 놓지 않았다. 다양한 시점에서 사물을 보고 조합해서 내놓았다. 미술발전의 큰 줄기중 하나는 사물을 보는 시각의 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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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한 우리의 시각
비트코인등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옳은 시각은 무엇일까? 특히 정부의 시각은 어때야 하는가? 모나리자와 아비뇽의 처녀들에 교훈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봐야 한다. 또 숨겨진 눈에 띄지 않는 진실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극단적인 투기현상에만 매몰돼 정책을 내놓는 것은 예수님만 크게 그리는 중세회화 수준에 그치는 정책이다. 최소한 투기 현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산업의 성장과, 사람들의 염원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르네상스 회화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모저모를 따져 4차 산업혁명의 기반까지 가는 것은 다음 수순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