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정아인 기자] “사람들은 도박을 좋아한다. 가상자산 투자는 사람들에게 도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최근 미국과 암호화폐 거래소의 대립 속에 미국 당국이 비판받는 논리 중 하나가 바로 ‘규제 불명확성’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을 진행 중인 리플(Ripple)은 미국에 대해 설명할 때 규제가 명확한 여러 국가들을 예시로 들어가며 설명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럽’이다. 실제로 SEC가 미등록 증권으로 지목한 솔라나(Solana)를 비롯해 니어(NEAR)와 폴카닷(Polkadot)의 본사는 각각 스위스와 독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최근 가상자산을 규제의 품으로 들이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유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20년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기본법인 이른바 ‘미카(MiCA) 법안’에 합의했다. 이어 유럽의회(EP)가 올해 4월 미카 법안를 통과시킴에 따라 해당 법은 2024년 하반기 중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EU의 가상자산 규제 가속화가 가상자산을 ‘호의적’으로 포용하고 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는 파비오 피네타 ECB 집행위원회 이사가 최근 가진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23일 유럽중앙은행(ECB) 파비오 파네타(Fabio Panetta) 집행위원회 이사는 제22차 국제결제은행(BIS) 연차총회에서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파네타 위원의 연설 제목은 “파라다이스 로스트(실낙원), 크립토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와 대처 방법”이다. 이날 그는 가상자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가상자산이 도박일 뿐 아니라, 스테이블 코인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블록미디어는 ECB 홈페이지에 공개된 파비오 파네타 위원의 핵심 발언을 요약 번역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 가상자산을 도박으로 취급해야 한다
2017년 이후 ‘디지털 골드’ 이야기가 퍼져나가며 ‘크립토 러시’가 일어났다. 미국 성인 5명 중 1명, 유럽 성인 10명 중 1명이 가상자산에 투자했다. 가상자산 최고 시가총액이 2조 5000억 유로(한화 3조 55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2021년 11월 암호화폐 겨울이 시작되며 2조 유로 상당의 가상자산이 감소해 수백 만 명에 이르는 투자자 피해를 입었다. 비트코인 사용자의 4분의 3이 초기 투자에서 손해를 입었다.
가상자산 거품이 꺼진다고 해서 가상자산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박을 좋아한다. 가상자산 투자는 사람들에게 도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가상자산 벨류에이션의 변동성이 높은 이유는 내재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 선호도와 시장 내러티브 변화에 민감하다.
암호화폐 생태계는 시장 실패와 부정적 외부효과로 가득하다. 적절한 규제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시장 붕괴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정책 입안자들과 규제 당국은 암호화폐에 엄격한 규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건전하지 않은 암호화폐 모델을 도박의 하나로 취급해야 한다.
# 가상자산 거래소가 중앙화를 촉진했다…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를 벗어났다
가상자산은 화폐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투기 자산, 금융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현재 가상자산은 탈중앙화라는 목표에서 멀어져 중앙화된 해결책과 시장 구조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이를 촉진했다. 지갑, 커스터디, 스테이킹, 대출 등 여러 가지 기능을 지원한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사용자에게 쉽고 저렴하게 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한계도 영향을 미쳤다. 가상자산 거래는 비용, 속도, 보안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트릴레마’에 직면했다. 또한 비트코인의 작업 증명 매커니즘은 탄소 발자국에 해롭고, 많은 이들이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타사 플랫폼을 통해 수행되는 오프체인은 가상자산의 핵심 원칙에 위배된다.
키 도난이나 분실 같은 측면에서도 자산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코드 오류나 중앙화된 사고를 관리하는 기관이 없다.
# 가상자산이 불안한 이유
가상자산은 내저적 가치가 부족하며, 지원 준비금이나 가격 안정화 메커니즘이 없다. 비트코인은 주식이나 금보다 변동성이 4배나 높다. 높은 변동성은 가치 저장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가상자산은 인플레이션 헤지 능력을 향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주식시장과 상관관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험적 분석에 따르면, 가상자산 시장의 모멘텀과 글로벌 금융 시장의 변동성은 명목 화폐에 대한 비트코인 거래에 영향을 미친다.
법정화폐와 연동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도 불안하다. 뮤추얼 펀드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만기 불일치 문제가 존재한다.
# 자산이 블록체인에 저장된 것과 관계 없이 ‘누가’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금융 서비스에서는 원장의 자산 보관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수백 년간 종이로 보관하던, 지금같은 중앙 집중 시스템에 보관하든, 블록체인에 보관하든 상관없다.
기업이 신용 위험, 시장 위험, 유동성 위험, 레버리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에 기생해서 성장하려 한다
가상자산 산업은 금융 시스템에 기생하여 성장하려고 한다. 가상자산은 금융 부문의 대안이라고 자기소개한다. 그러나 적절한 규제 안전장치가 없어서 발생하는 위험을 규제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가상자산은 기존 금융 산업과 관계를 스테이블 코인, 대기업과 협약을 통해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 실버게이트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의 파산은 은행이 가상자산을 통해 예금을 확보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보여줬다.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은 예금을 안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공공 안전망에 접근하려는 시도도 있다. USDC 발행자 서클은 스테이블 코인을 위해 연방준비은행의 역환매조건부채권에 대한 접근 권한을 얻고자 했다.
# 가상자산을 공적으로 지원하면 안 된다
앞으로 금융 당국은 세 가지 방법으로 가상자산을 지원, 규제, 혁신해야 한다.
첫째, 가상자산을 공적으로 지원하면 안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접근하게 허용할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을 아웃소싱하게 된다. 스테이블 코인이 중앙은행 화폐를 거의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둘째, 규제 당국은 가상자산을 안전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암시해서는 안 된다. 가상자산 활동을 유치하기 위해 건전하지 못한 가상자산 모델을 합법화하면 안 된다.
“동일 활동, 동일 위험, 동일 규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가상자산은 다른 자산만큼 안전할 수 없다. 가상자산에 대한 자금 세탁 방지와 테러 자금 조달 방지 규정을 시행해야 하며, 기존 기업의 가상자산 관련 활동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EU가 암호화폐 활동을 규제하는 포괄적인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암호화폐 자산 대출이나 비수탁형 지갑 서비스와 같은 탈중앙화 금융 활동을 포함하여 암호화폐 산업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규제해야 한다.
셋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제공해야 한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위험 부담이 없는 디지털 표준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민간 디지털 화폐 간의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 우리는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올해 말까지 조사를 완료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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