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스탠리 최 기자] 미국 뉴욕 남부지방 법원은 지난 13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랩스, 리플의 공동 창업자 브래드 갈링하우스와 라르센을 상대로 제기한 미등록 증권 판매 소송에 대한 약식 판결을 내렸다. 판결이 나온 3건의 사건 중 한 건은 SEC가, 두 건은 리플이 승소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커뮤니티에는 법원이 판결을 통해 ‘XRP는 그 자체로 증권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 디지털 토큰’이라고 명시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다.
유사한 문장이 34페이지 판결문 가운데 몇 곳에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당사자의 주장이 그렇다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재판부는 토큰 자체가 증권이냐 아니냐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SEC-리플 판결과 관련된 몇 가지 추가 팩트 체크를 해봤다.
# 리플의 완전 승소(X), 양측 각각 일부 승소(O)
아날리사 토레스 판사의 판결은 34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 담겼다.
첫 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SEC의 동의는 일부 승인되고 일부는 거부된다. 피고(리플)의 동의는 일부 승인되고 일부는 거부된다(the SEC’s motion is GRANTED in part and DENIED in part, and Defendants’ motion is GRANTED in part and DENIED in part)”로 시작한다.
지난 7월 15일 블록미디어가 판결문 전체 해설을 보도([리플 판결 완벽 해설] 리플, SEC에 2:1 판정승…34페이지 판결문에 담긴 것)하면서 이번 약식 판결이 당사자 한 곳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리플의 판정승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 재판부가 ‘XRP는 그 자체로 증권의 성격 없는 디지털 토큰이다’ 명시(X) – 각주에 ‘소송 당사자의 주장’이라고 설명
2페이지에는 사건 당사자인 초창기 리플의 XRP 지갑 개발과 리플의 설립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에 바로 이런 대목이 나온다. ‘XRP는 XRP 지갑의 네이티브 디지털 토큰이고 XRP 지갑이 작동하려면 XRP가 필요하다.(XRP is the native digital token of the XRP Ledger, and the XRP Ledger requires XRP to operate.)’
이 문장에는 각주가 달려있다. 각주를 보면 이 문장의 출처가 나온다. ‘달리 명시하지 않는 한, 이 부분의 사실은 당사자들의 진술, 반대 진술과 응답에서 가져온 것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실이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The facts in this section are taken from the parties’ Rule 56.1 statements, counterstatements, and responses, unless otherwise noted. Disputed facts are so noted.)
일부 트위터 사용자는 ‘XRP가 그 자체로 증권의 성격을 가지지 않는 디지털 토큰’이라고 판결문이 명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리플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는 서두에서 소송 당사자의 주장이 그렇다고 설명할 뿐, 재판부는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부분에는 ‘증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 리플은 일찍부터 XRP가 증권으로 간주될 법적 위험을 알고 있었다(O)
7페이지에는 ‘피고(리플)의 XRP 제안 및 판매에 대한 법적 조언’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2012년 2월 XRP 지갑이 공개 출시되기 전 라르센을 포함한 리플 설립자는 퍼킨스 코이 LLP(Perkins Coie LLP)라는 로펌으로부터 양해각서를 받았다. 각서는 무엇보다 XRP 판매와 관련된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런 부분이 나온다. “투자자에게 판매되는 XRP는 증권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설립자가 XRP를 발행하는데 자금 투자를 수반하지 않으면 XRP는 투자 계약으로 간주될 위험이 낮다.” 즉, 설립자가 XRP를 무상 발행하면 투자 계약이 아닐 것으로 조언하지만, 투자자에게 (유상으로) 팔게 되면 XRP는 증권으로 간주될 위험성이 크다는 게 당시 로펌의 조언이었다.
2012년 10월 이 로펌은 리플 네트워크 및 XRP가 제공하는 기능을 검토한 뒤 위험 완화를 권장하는 또 다른 양해각서를 리플과 라르센에게 보냈다. 다시 판결문을 보자.
“비록 우리는 XRP 토큰이 연방증권법 하에서는 ‘증권’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믿지만, 적용 가능한 판례가 없기 때문에 SEC가 우리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간의 리스크가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양해각서에는 “설립자와 리플이 XRP를 투자 기회로 더 알릴 경우, SEC가 조치를 취하거나 XRP 토큰이 ‘투자계약’이라고 좀 더 주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는 당시 로펌이 리플의 XRP 판매 행위가 적어도 SEC로부터는 ‘투자계약’ 즉, 증권 판매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음을 수 차례 주지시킨 것이다.
그리고 두 각서의 내용은 대법원의 투자계약 판결 표준인 하위 테스트를 바탕으로 XRP의 성격을 분석하는 데 사용됐다.
# 법원의 핵심 질문은 ‘XRP를 증권으로 판매했는지 여부인가'(O), 토큰 자체만으로는 증권성 판단 안돼(O)
판결문 10페이지부터는 양측의 주장을 바탕으로 법원의 논의한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법원의 질문은 ‘피고가 XRP를 증권으로 판매하거나 판매하겠다고 제안했는지의 여부’라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SEC는 피고(리플)이 XRP를 투자계약으로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피고는 XRP를 투자계약으로 판매하지 않았으므로 (증권) 등록이 필요없다고 주장한다’는 핵심 논지를 설명한다.
14~15페이지에 걸친 법원의 분석을 보자.
“여기서 피고(리플)은 XRP가 증권의 ‘거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금, 은, 설탕과 같은 ‘일반 자산’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논점을 놓치고 있다. 왜냐하면 금, 은, 설탕 같은 일반 자산도 상황에 따라 투자계약으로 판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XRP가 상품이나 통화의 특정한 특성을 나타내더라도 투자계약으로 제공되거나 판매될 수 있다.”
법원은 XRP가 디지털 토큰이고 증권이 아니라는 리플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처럼 XRP를 투자계약으로 제공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상황에 따라‘라는 단어다.
이어 판결문은 “디지털 토큰으로서의 텔레그램, XPR는 그 자체로 투자계약의 하위 테스트 요구 사항을 구현하는 계약, 거래나 계획은 아니지만, 피고(리플)가 XRP 판매, 배포와 관련된 거래와 계획의 서로 다른 상황을 둘러싼 전체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판결문에서 두번째로 ‘디지털 토큰’이라는 용어가 나온 부분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법원은 이 판결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토큰’이란 용어에 대해 “‘달리 명시하지 않는 한’ 이것은 당사자의 주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각주를 달아 뒀다. 이후 전체 34페이지 판결문 어디에도 법원은 디지털 토큰의 용어 정의를 따로 하거나 별도 사용하지 않았다.
법원은 누구나 디지털 토큰을 발행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토큰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하위 테스트를 적용할 순 없고, 토큰의 판매, 거래, 계획과 관련된 전체 상황을 통해 증권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다시 말하면, 토큰을 발행하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으면 증권성 여부의 판단 대상이 안되지만 토큰으로 무언가의 행위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증권성 여부의 판단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지속적으로 텔레그램 톤(TON)의 사례가 언급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텔레그램이 톤(TON) 코인을 발행한 행위는 투자계약 판단 대상이 아니지만 실제 판매 행위를 하자 증권성 판단의 대상이 됐다.
# 기관 투자자가 XRP 구매한 것은 투자계약에 해당하는가(O)
판결문은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한 XRP 판매에 대해 ‘기관투자자가 (리플에) 자본을 제공했는지’가 중요한 질문이라고 언급한다. 리플은 이 사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법원은 요건이 성립한다고 명시했다. SEC의 승리다.
이는 초창기 리플랩스를 자문하던 로펌이 수 차례 우려했던 대로다. ‘XRP를 유상으로 기관투자자에게 판매하면 SEC가 증권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법원은 22페이지에서 기관투자자들이 XPR를 구입하고 락업 기간, 리세일 시점을 설정한 것을 언급하고 “기관 판매의 특성은 리플이 판매한 XRP가 소매용이 아니라 투자용이었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제한 사항은 XRP가 통화 또는 기타 소매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개념에 배치된다”고 했다.
또한 법원은 “기관 판매 계약의 다양한 조항은 당사자들이 XRP 판매를 상품이나 통화의 판매로 보지 않고 그들이 XPR 판매를 리플의 노력에 대한 투자라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명시했다.
결론 부분에서 법원은 “따라서 법원은 경제적 현실과 상황의 총체성을 고려해 기관 판매를 둘러싼 리플의 XRP 판매가 증권법 5조를 위반한 미등록 투자계약 제안 및 판매를 구성한다고 결론내린다”고 판시했다.
# 프로그래밍 방식의 판매는 투자계약에 해당하지 않는다(O)
23페이지부터는 거래소를 통해 XRP를 불특정 개인에게 판매한 사건을 다룬다. 법원은 이 사건은 하위 테스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리플의 승리다.
판결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2017년부터 리플의 프로그래밍 방식 판매는 전세계 XPR 거래량의 1% 미만을 나타낸다. 따라서 디지털 자산 거래소에서 XRP를 구매한 대다수 개인은 리플에 그들의 돈을 투자한 것이 전혀 아니다. 기관투자자는 계약에 따라 인지한 상태에서 리플로부터 XRP를 구매했지만 프로그래밍 구매자(개인 투자자를 가리킴)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2차 시장 구매자와 같은 입장에서 돈을 지불했다.”
이어 “리플이 ‘명시적으로 투기꾼을 표적으로 삼았다’거나 ‘리플은 사람들이 XRP에 투자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을 것으로 이해했다’는 SEC의 주장은 충분하지 않다”고 명시했다. 판결은 실제 거래 당사자간의 약속이나 제안이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동기에 대한 추측만으로는 투자계약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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