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스탠리 최 기자]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으로 대표되는 웹3 분야의 중국 기업은 지난 몇 년 간 자신들의 신세를 ‘유랑자’로 표현한다. 중국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싱가포르, 두바이, 동남아시아, 유럽, 중앙아시아를 떠돈다.
그런데 홍콩의 가상자산 정책이 나오면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고 홍콩은 곧바로 중국 웹3 기업들의 첫 번째 선택지가 되었다.
중국매체 블록비트는 20일 가상자산 정책을 본격 시행중인 홍콩과 인접한 중국 본토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웹3 기업을 르뽀 형식으로 보도했다.
“중국 본토의 거의 모든 웹3 기업이 홍콩을 주시하고 있다. 이제 전국의 관련 기업들이 선전(深圳)으로 모이는 추세다.”
중국의 한 웹3 기업가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또 다른 기업가는 지인들 가운데 최소 10여개 기업이 홍콩에 사무실을 냈다고 말했다.
물론 홍콩의 웹3 정책과 집행 상황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계좌 개설이 어렵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한다.
홍콩에 가더라도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혁신이나 창업은 희망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 홍콩사이버포트에 입주하라
READ2N 공동 창립자 제프(Jeff)는 홍콩사이버포트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최근 홍콩사이버포트에 사무실을 얻었다. 여기에는 공용 헬스장, 카페, 회의실도 마련돼 있다.
READ2N은 블록체인과 AI 기술을 사용해 문학 작품을 전 세계로 서비스하는 회사다. 그동안 10여개국에서 90권 이상의 문학 작품을 출판했고 AI 기술을 통해 10개국 언어로 번역했다. 현재 5만 명의 등록 사용자와 4000명의 일일 활성 사용자가 있다.
READ2N은 2022년 말 싱가포르에 설립되었는데 올해 홍콩의 웹3 붐을 타고 홍콩으로의 이전을 결정했다.
2023년 1월 홍콩 ‘사이버포트웹3.0기지’가 공식 설립되었다. 천마오보(陳茂波) 홍콩 재무장관은 홍콩의 2023~2024년 예산을 발표하면서 웹3 생태계 발전을 가속화하는데 5000만 홍콩 달러(한화 81억원 상당)를 할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 장관은 6월 18일 “사이버포트 웹3.0기지 설립 이후 150개 이상의 기업이 정착했다”고 말했다. 현재 사이버포트에 사무실을 낸 기업은 암호화폐 거래소 해시키 그룹, 웹3.0 게임 개발사 애니모카 브랜드, 암호화폐 지갑 메타마스크의 이더리움 소프트웨어 기업 컨센시스(Consensys) 등 유명 프로젝트도 있다.
올초 READ2N은 홍콩사이버포트의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제프에 따르면 지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심사와 인터뷰를 거쳐 최종 합격하는 비율은 5% 정도로 알려졌다. 그는 “수 많은 프로젝트가 신청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중화권 스타트업”이라고 말했다.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 선발되면 사무실을 지원받을 수 있고 100만 홍콩달러(한화 1.6억원 상당)의 자금도 받을 수 있으며 멘토링도 해준다.
AIGO CEO 뤄후는 “금융, 전자상거래, 디파이(DeFi), 게임파이(GameFi) 등 각 부문에 걸쳐 지인들이 홍콩에 창업을 했고 홍콩에 진출하는 프로젝트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AIGO는 중국 항저우에 본사를 두고 있고 선전 등지에는 지사를 두고 있다. 뤄후 CEO는 연말까지 본사를 홍콩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콩 지역 협회의 도움으로 뤄후는 구룡반도 끝자락의 쿤통 지구에 사무실을 설립한 뒤 사이버포트와 사이언스 파크에 입주 지원서를 냈다.
그는 “서비스가 매우 마음에 들고 친절하다. 프로토타입 제품만 있으면 되고 제출할 자료도 사업계획과 같은 일상적인 업무 서류 정도로 복잡하지 않다.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 지원책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고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 선전 집결, 홍콩 입성
“중국 본토의 거의 모든 웹3 기업이 홍콩을 주시하고 있다. 이제 전국의 기업들이 선전(深圳)으로 모이는 추세다.” 웹3 기업 대표 람씨(가명)의 말이다.
선전에서 홍콩까지는 차로 9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통행증만 있으면 언제든 오갈 수 있다. 2015년부터 암호화폐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그는 “선전에 온 지 몇 달 됐고, 홍콩에서 웹3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열린 소규모 웹3 모임에서 베이징과 항저우 출신 기업가들을 만났는데, 선전에 온 목적은 예외 없이 홍콩 진출을 위해서였다. 람씨는 “홍콩의 웹3 지원 정책이 나오면서 1년 동안 잠잠했던 선전의 소규모 모임이 최근 갑자기 늘었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사람들은 홍콩-중국간의 편리한 교통, 싱가포르 보다 창업 비용과 생활비가 저렴하다는 점, 두바이나 유럽, 미국처럼 중국인을 배척하는 문화도 없는 것이 홍콩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 홍콩은 중국 기업의 첫번째 선택지
홍콩 웹3.0협회 부회장이자 유엔 아태지역 디지털 경제 실무그룹 회원인 바오위(包宇)는 “홍콩은 좋은 플랫폼을 가지고 있고 선전은 많은 인재와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의 조합은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최고의 창업 방식은 비즈니스, 투자 유치, 규제 준수는 홍콩에 두고, 개발 등의 주요 업무 인력은 선전 등에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READ2N의 공동 창업자 제프는 “홍콩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고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하나 둘씩 천천히 홍콩으로 옮기면 된다”면서 “홍콩에는 우대정책이 있고 창업가는 이 정책의 편리함과 비용 절감을 누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현재 홍콩에 진출한 기업들은 대부분 컴플라이언스, 마케팅 관련 소수 인력만 홍콩에 배치하고 대부분의 인원은 여전히 대륙에 두고 있다. 일부 프로젝트는 책임자가 가끔 홍콩의 사무실에 가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 수준으로 일을 하고 있다.
Divide(等分资本) 창립 파트너인 양웨이는 홍콩으로 가려는 기업들에게 “맹목적으로 가지 말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넷 기업을 두루 거친 양웨이는 2017년부터 주변 지인들의 프로젝트에 투자했다고 한다. 펜데믹 이후 홍콩을 갈 수 없었지만 홍콩이 가상자산 정책을 발표하자마자 양웨이는 홍콩으로 건너가 웹3에서 사업 기회가 있을지 시장 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양웨이는 “홍콩은 대륙과 세계를 잇는 가교로 중요성은 말이 필요없다”면서 “홍콩이 웹3.0 생태계를 강력히 추동하는 건 창업가들에게 드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규제 준수 게임
다만 홍콩은 선전은 물론 베이징 보다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곳이다. 사이버포트처럼 전전후 지원을 해주는 곳에 입주하지 못하면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높은 비용 외에도 홍콩으로 건너가는 웹3 기업들은 은행 계좌 개설을 할 때부터 규제 준수 문제를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자산관리업에 종사해 왔다는 할리(가명)씨는 2년 전 암호화폐 강세장 때 암호화폐 자산관리로 업종을 전환한 뒤 자산관리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는 “과거에는 규제 준수를 할 수도 없었고 ICO가 아니면 법적 위험도 크지 않았지만, 홍콩은 규제를 준수해야 하므로 합법적인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을 몇 번 다녀온 후 할리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 (자산관리) 면허를 신청하는 데 최소 수 백만 달러가 든다. 스스로 규제 준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최소 2명의 RO(라이선스 담당자 및 집행자)를 고용해야 한다. 신청에 성공해도 1년 이내에는 총 자산의 10%만 암호화폐 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데다 임대료, 인건비, 법률 비용 등을 합치면 2000만 위안(한화 35억 2600만원 상당)은 들 것”이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렇게 돈이 많이 들면 그냥 ‘빅파이’를 사두는 게 낫다”고 그는 하소연한다.
그가 말하는 ‘빅파이’는 비트코인을 가리킨다. 현재 비트코인은 3만 달러를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그는 비트코인이 2024년에 다음 번 반감기를 맞이하면 급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할리씨는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은행이 법인 계좌를 개설해주지 않는 것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몇몇 기업 관계자도 은행 계좌 개설이 안된다는 유사한 경험을 토로했다. 홍콩금융관리국은 홍콩내 블록체인 업종 친화 은행 명단까지 만들어 제공하고 있지만 이들 은행에서도 계좌 개설이 쉽지 않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꽌시를 활용해 은행장과 지인에게 물어봤지만 문제를 풀지 못했다”면서 “은행측은 공지받은 것이 없어서 계좌를 내줄 수 없고 잘못했다가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업계 관계자는 “본토의 지원을 받는 홍콩은 본토와 협력해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감독을 강화해야 하는데 암호화폐를 자금세탁의 주요 채널 중 하나로 보고 있다”면서 “웹3 기업이 홍콩에서 은행 계좌 개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업계의 적극적인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콩 금융관리국(HKMA)은 가상자산 기업의 은행 계좌 개설이 어려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과 가상자산 기업간의 간담회를 소집해 은행에 가상자산 기업의 계좌 개설에 필요한 자료 안내를 하라고 요구했다.
이 간담회에 참석한 중안은행(众安银行) CEO 대행 센디윈(冼迪云)은 “금융관리국이 웹3.0 생태계 발전을 지지하고 있지만 은행의 우려와 걱정도 이해해야 한다. 다만 회의는 은행과 다른 참여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 쌍방이 서로의 요구 사항을 보다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될 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상자산 기업이 계좌 개설을 할 때 은행이 고객 조사를 하는데 간단히 하면 2~3주만에 끝나지만 주주구성이 복잡할 경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계좌 개설 자체가 안되는 문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READ2N의 공동 창립자인 제프는 자신들은 사이버포트의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사이버포트의 지원으로 은행 계좌 개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이 웹3 생태계 발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런 문제는 점차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다시 차분해진 홍콩, 현실과 장기적 가치 보라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홍콩의 웹3 관련 행사는 이미 100회 이상 개최됐다. 일부 기업가는 “아침부터 밤까지 참여하는 활동이 새벽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이런 광경이 사라지고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지난 6월 1일, 홍콩의 가상자산 거래소를 위한 새로운 라이선스 시스템이 발효됐다. 이제 합법적인 거래소를 통해 소매 투자자들도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홍콩 입법회 위원 우제좡은 “150개 이상의 회사가 라이선스 신청서를 제출할 의사를 표명했고 일부 회사는 이미 신청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홍콩 웹3.0협회 부회장 바오위는 “핵심 문제는 이미 해결됐고 세부 사항도 시간 문제”라며 “현재 홍콩 정부의 기조도 매우 잘 돌아가고 있어 별 문제는 없고, 다만 여기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소요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가상자산 기업으로 홍콩에서 라이선스를 받고 업무를 추진하려면 인력 수급부터 로펌의 자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돈 100억원대 투자는 각오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다만 많은 기업가들은 단기적인 흐름보다는 실제 가치와 장기적인 가치에 주목하고 홍콩에 진출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