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준호 기자 = ‘김치프리미엄'(가상자산이 해외 거래소보다 국내에서 더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을 악용하고 거액의 외화를 불법 유출한 것으로 조사된 투기세력들이 대거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금품 등을 수수하며 불법 외화유출을 묵인한 것으로 파악된 금융회사 직원들도 재판에 함께 넘겨졌다.
25일 대검찰청은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업무방해 등 혐의를 받는 불법 외환유출 사범 A씨 등 49명(29명 구속)과 금융회사 직원 B씨 등 7명(2명 구속)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해외로 도주한 5명에 대해선 기소중지(지명수배)를 내렸다.
이들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7월에 걸쳐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해 한국에서 수익을 낸 뒤 해외로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A씨 등이 해외로 송금한 외화 규모는 13조원 상당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입한 뒤 이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 전송·매각하고 해당 대금을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송금, 이후 허위 무역대금 등을 명목으로 해외로 다시 송금하는 방식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A씨 등이 범행을 저지른 기간, ‘김치프리미엄’이 약 3~5%로 산정돼 외화 불법유출 사범과 투기자금 제공자들은 최소 3900억원 상당의 이익을 나눠 가진 것으로 파악했다. 이 가운데 A씨 등은 281억원 상당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범행의 이면에는 묵인하거나 도와준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있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시중의 한 은행 전 지점장 B씨와 증권사 팀장 C씨는 이들로부터 명품시계와 가방, 현금 등 각각 2500만원, 5800여만원을 수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불법 외화유출을 도운 것으로 조사된 금융회사 직원 7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이 중 B씨와 C씨는 구속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 외화유출을 방지·감독해야 할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오히려 범행을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도와준 대가로 현금, 고가 명품, 골프 접대 등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전했다.
아울러 외국환거래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2개 금융회사 법인에 대해선 양벌규정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은행은 외환 영업 실적 경쟁 분위기 속에서 일부 영업점이 외환송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송금사유나 증빙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고인들의 계속된 범행이 가능했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실제 한 은행은 해외 송금 실적이 범행 당시 300배가 넘게 폭증했음에도 우수 지점으로 선정돼 은행장 포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수사를 통해 사전송금방식 통관수입대금 지급 관련 외환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나 이를 개선하기 위한 행정관서와 외국환은행들의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국가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전문분야의 구조적 비리에 대해서도 엄단하고 범죄수익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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