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정필 기자 = 시중의 막대한 유동자금이 은행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투자 관망세가 지속되고 1금융권과 2금융권 간 수신상품 금리차도 좁혀지면서 시중은행에 자금이 쏠리는 상황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은 상반기 말 기준 623조8731억원에 달한다.
전월보다 21조494억원 급증한 규모다. 기업고객 위주의 MMDA 잔액은 9조7810억원 늘었다. 개인고객이 대다수인 MMDA 제외 입출금통장으로는 한 달간 11조2684억원이 몰렸다.
요구불예금은 입금과 출금이 자유로워 대기 자금 성격이 강하다. 수시입출금 통장 형식으로 투자를 관망할 때 주로 이용된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 시장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투자를 기다리는 수요가 그만큼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은행 금리를 선택하는 금융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1금융권과 2금융권 간 수신금리 차이가 좁혀지면서 최근에는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인터넷은행의 일부 상품금리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여기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로 인한 저축은행의 대출 연체율 상승과, 새마을금고 예금 인출 사태 등의 영향으로 리스크를 줄이려는 수요가 시중은행으로 몰리는 모습이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6월말 822조2742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간 4조6827억원 불어난 규모다. 이 기간 정기적금 잔액도 40조841억원으로 1조421억원 증가했다.
빚을 내서 투자할 때 이용되는 신용대출은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6월말 108조9289억원 규모로 한 달간 7441억원 규모가 더 빠져나갔다.
이는 지난 2021년12월 이후 1년7개월 연속 감소세다. 고금리 상황에서 대출 이자를 넘는 투자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을 반영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우리나라 가계에 축적된 초과저축(여유자금) 규모가 100조원을 넘는다는 한국은행 분석도 나왔다. 한은이 발간한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2020~2022년 국내 가계에 축적된 초과저축 규모는 101조~129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팬데믹 이전(2015~2019년) 평균 7.1%를 나타내었던 가계 저축률은 팬데믹 이후(2020~2022년) 평균 10.7%로 상승했다. 이번 분석은 미국 샌프란스코 지역연준 등의 방법론을 적용해 팬데믹 이전 추세를 상회하는 가계 저축액을 초과저축으로 추정했다.
이 기간 가계의 금융자산은 1006조원 늘어나 직전 3개년(2017~2019년) 591조원에 비해 증가폭이 크게 확대됐다. 현금·예금의 보유비중이 지속적으로 커졌는데 이는 미국과 유로지역 등 주요국과 다른 모습이란 진단이다.
보고서는 “가계는 초과저축을 부채상환에 이용하기보다는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산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가계가 실물 및 금융상황의 높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향후 추이를 관망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팬데믹 이후 늘어난 가계 초과저축은 부정적 소득충격에 따른 소비부진을 완충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편, 향후 기대변화 등에 따라 자산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상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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