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K-99 논문 아카이브 등재가 진위 논란 부추겨
“절차 문제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의견도
지재권 보호 차원…표절·가로채기 등 우려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우리나라 연구진들의 ‘상온 초전도체’ 개발 소식에 전세계가 들썩였던 한주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팀이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린 상온 초전도체 ‘LK-99’와 관련한 논문 2편이 발단이 됐다.
논문의 핵심 내용은 ‘상온 초전도체’ 물질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레시피. 얼핏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단순한 요리 레시피도 아닌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신물질을 만드는 법을 고스란히 공개했으니 말이다.
논문 게시 직후부터 상온 초전도체의 진위 여부를 두고 전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관련 논문이 공인 학술지 등이 아닌 개방형 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라오면서 신뢰도 문제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워낙 파급력이 큰 연구인 만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일종의 ‘깃발 꽂기’를 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출고일자 2023. 08. 04
|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게시된 상온 초전도체 ‘LK-99’ 관련 논문. (사진=아카이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정부 통해 발표되는 韓 연구 성과…”LK-99도 절차적 문제는 없어”
그동안 주요 연구성과가 발표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연구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경우 통상적으로 과기정통부, IBS(기초과학연구원), 출연연 등과 접촉해 검증을 거친 뒤 공식 발표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 성과가 공신력 있는 논문 저널지 등에 올라간 이후 과기정통부 등에 사후 보고를 하면 정부가 관련 연구재단, 전문가 등과 논의를 거친 뒤 공식 발표하는 게 관례다.
아예 정부나 출연연 측에서 먼저 공식 발표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연구진의 성과가 공신력과 저명도가 높은 ‘사이언스(Science)’, ‘네이처(Nature)’ 등의 표지논문으로 등재되거나 국제사회에 특허 출원되는 등의 경우다. 이때는 정부나 출연연이 연구진에 먼저 제안을 하고 마찬가지로 추가 확인을 거쳐 공식 발표가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LK-99’는 두 경우 모두 아니다. 아직 논문 심사도 받지 못해 학술지에 게재되지 못했고, 정부와의 접촉도 딱히 이뤄진 바 없다. 과기정통부는 LK-99 연구 지원 사업이 교육부 소관인 만큼 섣불리 간섭하기도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수개월 소요되는 정식 논문 게재…LK-99, 가로채기·표절 피해 ‘지재권 깃발’ 꽂았나
학계에서는 이번 LK-99 논문의 아카이브 공개가 절차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연구계의 동향을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행보라는 것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 2건은 엄밀히 말하면 ‘정식 논문’은 아니다. 연구소 측 또한 아직 논문 심사가 진행 중이라며 이같은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정식 논문이 아니기에 정부 차원의 공식 발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아카이브에 논문을 전체 공개해버린 것은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차선책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상온 초전도체 아이디어와 개념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깃발을 꽂았다는 것.
한 학계 전문가는 “논문 게재를 위해 피어 리뷰(동료 평가) 등을 거치면 적어도 한 달에서 길게는 반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며 “요즘 기술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는데, 이같은 절차를 밟다가 다른 논문이 나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동료 평가를 비롯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연구자 간 ‘성과 표절’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학술연구와 관련된 동료심사의 윤리기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동료 평가 심사자의 윤리 의무 위반의 사례로 심사자의 표절을 명시하고 있다. 연구비 지원기관이나 학술지 발간업체 등의 입장에서는 심사자의 표절 문제를 비교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반면, 많은 연구자들이 논문 투고 및 연구비 신청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 중 하나가 심사자의 표절이라는 것이 골자다.
출고일자 2023. 08. 02
|
퀀텀에너지연구소 및 한양대 연구진이 공개한 상온 초전도체 ‘LK-99’. (사진=김현탁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美 연구계, 지재권 보호 위해 ‘오픈 액세스’ 개념 활발…퀀텀에너지 “논문 심사 후 샘플 공유”
학계에 따르면 이같은 우려는 국내외에서 다반사로 제기되고 있다. 표절 우려 등으로 최근 미국 학계에서 ‘오픈 액세스’의 개념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오픈 액세스는 학술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을 목표로 인터넷에서 누구나 각종 연구 성과물을 출판·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완전한 논문 형태가 아닌 아이디어·초록 수준이더라도 미리 인터넷에 공개해 지식 재산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실제로 미국 학계에서는 오픈 액세스의 형태로 아이디어를 낸 시점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리 대중에 연구성과를 일부 공개해버림으로써 추후 아이디어를 뺏기더라도 ‘내 것’ 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미리 지식 재산권을 못 박아 놓은 후 정식 논문은 시간을 걸쳐 준비해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 또한 현재 LK-99 관련 논문 심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 2~4주 가량 소요될 심사를 마치기 전까지는 아카이브에 게시된 논문 외에 LK-99의 시편(샘플) 등도 공개하기 어렵다는 게 퀀텀에너지연구소의 입장이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는 초전도체 열풍이 일어난 이후 최초로 지난 4일 언론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는 “LK-99의 레시피를 전 세계에 공개했기 때문에 지금 전 세계에서 검증을 진행하고 있고, 샘플을 달라는 요청도 많아 매우 바쁜 상황”이라며 “조만간 관련 내용을 모아 정리해서 발표할 수 있을 거다. 한 달 후쯤 발표하는 자리를 갖겠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