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진석 기자] 지난 2021년 초 마이클 소넨셰인 CEO가 그레이스케일의 키를 쥐었을 때 그의 임무는 간단해 보였다. 암호화폐 시가총액 1위 비트코인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레이스케일은 이미 비트코인 신탁 펀드를 운용 중이었다. 증권거래위원회(SEC) 문턱을 넘기 위해 소넨셰인은 소송도 불사했다.
포춘은 소넨셰인이 공들인 비트코인 현물 ETF 주도권을 월가의 다른 운용사들이 빼앗아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기사 내용 요약
◇ 비트코인 ETF가 뭐길래
소넨셰인이 바라는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비트코인을 그 어느 때보다 싸고 쉽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암호화폐는 주류 금융권에 편입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욕대학교(NYU) 스턴(Stern) 경영대 출신의 JP모건의 경험을 지닌 금융권 인사에게 암호화폐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소넨셰인이 CEO에 자리에 오른 지 2년 반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레이스케일은 ETF를 갖지 못했다. 그레이스케일은 업무 성과가 아닌 SEC와 소송하는 회사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레이스케일은 SEC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 외에도 고객과 경쟁사로부터 법적 분쟁에 휘말려 있다. 이 모든 것은 연방법원이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줄 경우에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레이스케일이 ETF를 손에 넣게 되더라도, ‘경쟁’이라는 새로운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운용 자산 규모만 1경원이 넘는 블랙록과 같은 거대 금융 기업들이 비트코인 ETF(현물)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이는 앞으로 수 천억 달러의 유동성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유입돼, 30조 달러 규모의 자본 시장의 문을 여는 것이다.
소넨셰인은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레이스케일의 일에 집중하고 있고,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며 용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포춘은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그레이스케일이 손실을 볼 수 있는 실질 위험이 있으며, 그레이스케일은 한물간 기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소넨셰인, 레거시 금융 출신의 암호화폐 수장
소넨셰인이 그레이스케일의 수장이 된 것은 그가 암호화폐 주요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암호화폐 유명 인사들이 급진주의자나 괴짜, 무법자 등의 오명을 지니게 되었지만, 소넨셰인은 키가 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 조지아 애틀랜타에 위치한 에머리 대학교를 졸업했다. 에머리 대학교는 전미 대학랭킹 20위권의 최상위권 ‘뉴아이비리그’ 에 속하는 곳으로, 그는 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뉴욕대학교(NYU) 스턴(Stern)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바클레이즈, JP모건에서 근무했다. 그레이스케일에는 창립 시기인 2014년에 합류했다.
아마도 이러한 배경이 그가 그레이스케일의 새 얼굴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규제 당국과 금융계 거물에게 어필할 수 있는 홍보대사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는 포춘지에 “1호 직원이 되면서 모든 일을 해보았다”라며 “그렇게 CEO 역할에 대비할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그레이스케일에서의 그의 업무는 초기에는 쉬운 편이었다. 창업자 배리 실버트 덕분이었다.
그레이스케일의 창업자 ‘배리 실버트(Barry Silbert)’는 비트코인으로 전통금융의 영역에서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사람이었다.
2013년 실버트는 투자자들에게 고급 와인이나 비상장 주식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하는 업체 ‘세컨드 마켓’을 운영했다. 세컨드 마켓은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신탁 상품을 만들어 신탁주식(GBTC)을 판매했다.
사실 일반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는 이러한 신탁상품이 신통치 않았다.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싶다면 코인베이스나 크라켄 거래소를 통해 구매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어떤 초기 비용이 들지 않는 매매 방법이 있는데, GBTC를 사고자 한다면 그레이스케일에 연간 2%의 관리 비용을 지불하고, 자금도 묶여 있어야 했다.
그레이스케일의 투자자에게는 GBTC 계약도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회사도 신탁 자산의 규모 증가에 따라 높은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그레이스케일이 2020년에 브로커 자격을 취득한 이후에 약정 기간을 12개월(1년)에서 6개월로 줄이면서 많은 차익 거래 기회도 생겨났다.
GBTC는 밀레니얼 세대 투자자들의 투자 기업 TOP5에 애플, 테슬라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아무도 2%의 수수료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레이스케일의 목표는 비트코인 현물 ETF
사실 그레이스케일에게 비트코인 신탁은 임시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장기 계획은 미국의 규제가 발전하기를 기다린 뒤, 비트코인을 ETF에 주식으로 편입하는 것이었다.
시장 애널리스트들은 빅 머니를 가진 연기금과 기관 투자사들은 그들이 구조적으로 익숙한 ETF를 환영할 것이고 암호화폐 시장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에릭 발추나스 블룸버그 ETF 애널리스트는 “이들은 30조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으며, 이중 1~2%를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그레이스케일만 암호화폐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900달러대였던 2013년 설립된 윙클보스 형제의 제미니(Gemini)거래소는 2017년 ETF 출시를 위해 SEC에 서류를 냈지만 거부당했다. 비트코인 시장이 너무 작고 거래량이 적어 조작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비슷한 시기 그레이스케일도 GBTC를 ETF로 전환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신청을 철회했다.
이후 제미니가 다시 한번 SEC에 신청서를 냈지만 역시나 불허됐다. 같은 이유로 SEC는 다른 9개 기업의 비트코인 ETF를 모조리 거절했다.
그 사이 그레이스케일은 비트코인 신탁 외에도 이더리움과 라이트코인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신탁 상품을 출시했다. 한 때 그레이스케일의 관리 자산 규모는 600억 달러(약 80조원)이 넘었고, 한 달 수수료 수익만 2천만 달러(약 268억원)에 달했다.
그레이스케일의 이같은 호조세는 2021년 초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윽고 반전 상황이 발생했다.
# 암호화폐 약세장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은 거래소 매매보다는 다소 복잡하지만, 인증된 금융 기관의 관리를 받고 기관의 유입을 쉽게 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었다. 비트코인 현물로 교환할 수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10% 이상에서 최대 40%까지 프리미엄이 순자산가치에 가중치로 더해졌다.
2021년 3월 GBTC가격은 순자산가치(비트코인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그 격차도 벌어졌다. 캐나다와 유럽에서 비트코인ETF가 승인되었고 페이팔과 로빈후드와 같은 주류 기업에서 비트코인을 직접 구매할 수 있게 된 이유 때문이었다.
이때 만 해도 그레이스케일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7만 달러 부근까지 상승하면서 그레이스케일 주가도 상승세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현물의 시세 상승과 주가 상승을 발판으로 2021년 10월 그레이스케일은 SEC에 GBTC를 현물 ETF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문제는 그해 말 암호화폐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GBTC의 디스카운트 폭이 확대되면서, 투자자들은 매력적이지 않은 상품에 돈이 묶였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점이다. 기관도 오래동안 지속된 암호화폐를 통한 수익이 갑자기 사라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포춘지와 인터뷰한 한 암호화폐 업계 임원은 “모두가 갑자기 물려버린 캐리트레이드(돈을 빌려 금융자산을 매입한 뒤 일정 기간 이후 매각으로 차익을 누리는 거래)였다” 라면서 “쓰리애로우캐피털 (3AC)를 포함한 여러 크립토 펀드들이 유동성이 떨어지는 GBTC를 보유해 모두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그렇게 2022년 3월 3AC가 파산했고 암호화폐 시장의 약세장은 가속화됐다. 석달 뒤 SEC는 그레이스케일의 ETF 신청을 거부했다. 그레이스케일은 SEC의 ETF불허 결정 당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레이스케일과 SEC 소송, 상세 내용은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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