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새 70원 넘게 치솟았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 향방이 엇갈리고 이유가 크다. 미국의 경기 지표가 호조를 보이며 긴축 기대와 함께 달러 강세에 불을 지피고 있다.
반면, 중국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에 부동산 업체 파산 가능성은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변수에 당분간 원·달러의 1400원 진입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본다.
20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8일 원·달러는 전 거래일 대비 3.7원(0.28%) 내린 1338.3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7일 3.60원 내린 이후 8거래일 만에 내림세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계속해서 오름세다. 이번달 하락한 날은 지난 7일과 18일 등 이틀에 불과하며 8월 원·달러 상승 폭은 63.7원에 달한다. 한 달 전인 7월19일(1265.6원)과 비교하면 무려 72.7원 급등했다.
◆탄탄한 美경기…긴축 시사에 달러값↑
7월 중순만 해도 원·달러는 미국의 연내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기대감에 1260원대에 머물렀다. 달러에 본격 힘이 실리기 시작한 건 미국의 신용 등급이 강등 직후다. 등급이 떨어진 건 미국이었지만,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 선호가 높아지면서다.
이달 1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 국가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이 영향으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인덱스는 직전까지 101선에서 움직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102대로 튀어 올랐다.
달러는 미국의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불거지며 또 한 번 힘을 받는다. 16일 (현지시간) 공개된 연방준비제도의 7월 회의록에는 “참석자 대부분이 통화 정책의 추가 긴축이 필요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당한 상승 위험을 계속 봤다”고 언급됐다.
미국 경제 지표의 호조도 미국의 긴축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미국 7월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0.7% 증가하면서 최근 6개월간 가장 큰 증가 폭으로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0.4% 증가)를 뛰어넘는다.
달러 강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각) 103대로 올라선 달러인덱스는 지난 17일 오후 4시12분 현재 103.42를 기록 중이다. 한달 전인 7월 18일 99.94에 비해서는 3포인트 이상 높다.
◆흔들리는 中경기…부동산업체 부실에 원화값↓
중국발 ‘악재’는 원화 가치를 끌어내렸다. 중국 경기 지표가 부진한데 다 부동산 개발업체 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부실 리스크에 에버그란데(중국명 헝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하며 금융 불안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다.
중국의 7월 수출 규모는 전년동월대비 14.5% 감소해 로이터 전망치(-12.5%)를 하회했고,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2.5% 증가해 블룸버그의 전망치(4.0%)를 밑돌았다. 청년실업률도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JP모간체이스는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전달보다 0.2%포인트 내린 4.8%로, 바클레이스는 기존 4.9%에서 4.5%로 낮췄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021년 2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해 디플레이션 우려도 높아졌다.
중국 위안화 역내 환율은 지난 17일 7.3172위안으로 2007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가치가 급락했다. 위안화 투매에 원화값이 동조 현상을 보인데 다, 중국 경기 불안에 우리나라 수출 악화 우려가 높아지며 원화 약세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원·달러 변곡점은? “美·中 상황 지켜봐야”
시장에서는 미국의 긴축 우려와 중국발 악재가 잠잠해질 때까지 환율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원·달러가 한동안 1350원에서 등락하면서 1400원를 노크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단기간 1300원 후반까지 오를 것”이라면서 “1400원을 터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관건은 미국 연준의 금리 방향성 시사와 중국 부동산 디폴트 우려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여부다. 특히 달러 강세의 변곡점은 이달 24~26일(현지시각) 열리는 잭슨홀 회의에서 파월 연준 의장의 메시지에 달려있다는 관측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잭슨홀 미팅과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의 연준이 어떤 메시지를 내는지가 가장 큰 변수”라면서 “중국 부동산 안정화 여부도 원·달러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환율 급등은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 운용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 수준인 2.0%인 상황에서 미국의 추가 긴축 시사에 따라 한미 금리차 역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까닭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미국의 연내 정책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환율이 또한번 불안해질 우려가 높다. 우리나라도 금리를 높여 대응해야 하지만 경기 부진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한은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njh3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