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James Jung 기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제학 학위가 없습니다. 법학을 했습니다. 칼라일 그룹 등 월가 투자은행을 거쳐 공직자가 됐습니다.
파월 의장은 절묘한 처세로도 유명한데요. 워싱턴 관가와 정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압니다.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금리를 내리라고 대놓고 압박을 할 때도 묵묵히 참았습니다.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이 재지명을 할 때도 최대한 몸을 굽혔습니다. 의회에서는 새파랗게 어린 의원들 앞에서도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답합니다.
파월 의장이 25일 잭슨홀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문을 정독했습니다. 파월 의장에게 뜻밖에 문학적 소양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통화 정책의 어려움을 얘기하며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s is often the case, we are navigating by the stars under cloudy skies.”
“흔히 그렇듯이, 우리는 흐린 하늘에 별들을 보며 항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파월 의장의 이번 연설은 지난해보다 분량이 길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거둔 성과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산발적인 전투를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연준의 물가 목표는 2%”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월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물가 목표 3% 수정론’을 차단한 것입니다.
‘2% 목표’는 하늘에 떠 있는 별입니다. 바다는 예측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항법 장치가 없던 고대부터 뱃사람들은 별에 의지해서 항해를 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그 별이 흐린 하늘 때문에 깜박깜박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그 별 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모순입니다. 별(각종 경제지표)은 자꾸 움직입니다. 심지어 별이 아예 안보이기도 합니다. 일부 고용지표는 별 역할을 못합니다. 구인공고는 감소하는데, 실업률은 올라가지 않는 이상한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파월은 어떤 별을 보고 항해를 하게 될까요?
문학 이론가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가 쓴 ‘소설의 이론’ 서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의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시적인데요. ‘소설의 이론’은 근대 소설의 등장에 대한 문학 비평서입니다. 시(서사시)의 시대가 끝나고, 소설의 시대가 열렸음을 말해줍니다.
근대 이전 서양 세계에서 서사시는 신이 만들어 놓은 운명과 그 운명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묘사합니다. 인간사가 괴롭기는 하지만 완벽한 신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밤 하늘의 별이죠.
그러나 소설은 “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통스러운 자각의 산물입니다. 시인은 신과 함께 죽었고, 별은 더 이상 길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한 세계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세계가, 문학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바뀌었음을 선언합니다.
파월 의장이 루카치를 읽었을까요?
앞으로 통화 정책은 “별 그 자체도 흔들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수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설명하기 어려우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상황에 대응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과거) 이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루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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