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온 금융업계의 ‘카르텔’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면서 향후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자본시장 불공정 관행에 대해 철퇴를 가하면서 금감원 증권라인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본시장 내 임직원들의 사익추구 행위, 각종 증권범죄 등에 대해 칼을 빼든 데 이어 최근엔 끝난 줄 알았던 라임펀드 사태에서 정치인 특혜 의혹까지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라임·디스커버리 등 전면 재조사…금투업계·정치권 파장 확대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4일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3개 환매 중단 사모펀드를 재검사한 결과 추가 위법 혐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운용사에서 시작한 이번 재조사 파장은 정치권 특혜, 판매사 연루 의혹 등으로까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금감원은 다선 국회의원 등 일부 유력인사가 환매 중단 직전에 투자금을 돌려받았다고 발표했다. 이후 언론 취재를 통해 특정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판매사인 미래에셋증권의 권유에 따라 환매했을 뿐이라며 즉각 반박, 현재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도 “논란이 되는 라임 특혜 이슈는 판매사가 아닌 운용사에 관한 사안”이라며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금감원은 판매사가 운용사를 통해 사태를 미리 인지하고 환매를 권유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증권사가 어떤 근거로 투자자들에게 환매를 권유한 것인지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성역없는 검사·조사…달라진 증권 라인
이번 이슈는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 부원장이 브리핑을 맡는 등 금감원 자본시장 라인이 일선에 나선 사건이다. 이복현 원장 취임 이후 금감원에서는 자본시장 라인, 특히 그 중에서도 금감원 고유 역할이 강조되는 검사 및 조사 부문에서 시장 주요 이슈들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감원 자본시장 라인 한 축에는 황선오 부원장보가 담당하는 금융투자와 김정태 부보의 공시조사, 장석일 전문심의위원의 회계 파트가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 파트가 금융소비자 이슈와 더 밀접했던 은행, 보험, 카드 파트보다 일선으로 나온 건 이례적이다.
특히 황선오 부보 아래에 있는 금융투자 관련 6개 부서 중 감독국보다 검사국이 부각되고 있는 점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대개 금융투자 부서 중 선입급 국장은 감독국에 임명되지만, 최근엔 김진석 금융투자검사국장, 김형순 자산운용검사국장 등을 필두로 한 검사국들이 더 부각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취임 이후 그간 암암리에 행해졌던 자본시장 내 불법적 관행들과 임직원들의 사익추구 행위, 각종 증권범죄 등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선전포고하며 검사 파트에 더 힘을 싣고 있어서다.
실제로 금감원은 증권사와 운용사 임직원들의 비리, 다수 증권사들이 연루된 채권 신탁 돌려막기 관행, 금감원 감독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기관 전용 사모펀드(PEF) 등으로까지 성역없는 검사 및 조사를 단행했다.
아울러 조사 파트는 이복현 원장 취임 이후 가장 존재감을 발휘하는 부서다.
임원 인사에서도 조사 라인에 힘을 실은 것이 두드러진다. 금감원은 지난 7월 10개월 간 비워뒀던 공시조사 부원장보를 김정태 부보로 채우고 황선오 부원장보를 금융투자 부보로 임명했다. 공시조사 부원장보 자리에 금융투자 부보보다 선임이 앉은 점이 이례적이지만, 그간 경력 등을 고려해 공시와 검사 부문에 특화된 김 부원장보에게 공시조사 부문을 맡긴 것으로 풀이된다.
상반기 중 이복현 원장은 기존 조사국 간 역할 경계를 없애고 조사1국(고영집 국장)·조사2국(이승우 국장)·조사3국(한재혁 국장)으로 조직을 개편. 인력을 25명 충원했다.
◆”카카오 조사, 달라진 금감원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시장 의혹 있으면 즉시 대응
특히 조직 재정비와 함께 불공정거래 대응이 기존과 많이 달라졌다는 게 업계 평가다. 카카오 시세조종 의혹, 상장사 고위 임원들의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 등 시장 관심을 받는 이슈들에 빠르게 대응하면서다.
수사 종결 뒤에야 이뤄지던 ‘사후’, ‘익명’ 원칙의 조사 결과 발표도 이 원장 취임 이후로는 ‘실시간 대응’으로 바뀌는 등, 이 원장은 증권 범죄 엄단에 대한 시그널을 거듭 시장에 보내고 있다.
달라진 금감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금융투자업계와 당국 관계자들은 카카오의 에스엠 시세조종 의혹 조사를 꼽는다.
이복현 원장은 조사 중인 카카오의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실체 규명에 자신있다”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또 의혹이 제기된 지 약 한달 만인 4월 검찰과 금감원이 공동으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과거에 금감원이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조사 착수 여부조차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아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다.
이 밖에도 올해 라덕연 사태 이후 5개 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터지자 이복현 원장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며 사실상 조사 사실을 즉시 밝혔다.
2차전지, 로봇 등 특정 테마주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점도 이례적이다. 특정 종목을 언급하면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시장 질타에 금감원은 테마주에 대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 4월 주가 부양 목적으로 시장 관심 사업을 추가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검찰과의 협업이 긴밀해지면서 조사가 신속해진 점도 있다.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3일까지 금감원이 패스트트랙(신속 수사 전환)으로 검찰에 통보한 사건 수는 총 16건에 달한다.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대폭 늘었는데, 20건 중 이복현 원장 취임 이후 선정된 건수만 18건이다.
검찰 통보된 사건에는 카카오의 에스엠 주가 시세조종 혐의, 하이브와 한앤컴퍼니, KB국민은행 임직원 등의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선행매매, 사모 전환사채(CB) 악용 불공정거래 11건 등이 있다.
패스트트랙은 표면상으로는 증권선물위원장 전결로 고발 조치되지만, 실질적으론 금감원과 검찰 간 협의가 중요한 일이라, 검사 출신 이복현 원장의 장기가 잘 발현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사회적 관심이 크고 의혹이 있다면 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금감원의 입장”이라며 “2차전지주 등 테마주에 대해 주의를 준 것도 이례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데, 테마주를 악용한 불공정거래에 대비해 사전적으로 시장에 주의를 주고 점검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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