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FTX Legal Clinic Project 성웅규 변호사] FTX는 바이낸스(Binance)와 코인베이스(Coinbase)에 이어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였으나 도덕적 해이와 위기관리 실패로 거래소 운영이 어려워지자 2022년 11월 11일 미국 연방 델라웨어 파산법원에 챕터11 절차를 신청했다.
일반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소는 제도권의 뒷받침이 있는 은행이나 증권거래소와 달리 법적 보장이 상대적으로 미비하여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피해자들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던 과거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도산 사례와 달리 FTX는 자산이 없는 깡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도산절차에서 피해를 본 한국인들이 일부나마 변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예측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챕터11이라고 불리는 복잡다단한 미국 연방 파산법 절차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이해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질 때마다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특히, 채무자인 FTX측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피해자들에게 가능한 한 적은 액수를 반환해주는 선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권리가 심각하게 타격을 입는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점은 그리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 한국이 가장 큰 피해자일 수도, 그러나 한국인에게 차별적인 높은 언어 장벽
블록미디어가 보도한 ‘FTX 국내 피해액 4.5조원대…평균 피해액 7500만원‘, 코인게코에 올라온 기사 ‘Which Countries Are Most Impacted by FTX’s Collapse?‘를 보면 매체들은 입을 모아 FTX 파산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 채권자들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FTX가 이 파산절차에 임하는 자세가 한국인들에게 그리 유리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FTX 한국 고객들도 다른 나라 고객들과 마찬가지로 챕터11 절차에서 무담보 채권자(unsecured creditors)에 해당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재 2,250건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법원문서와 일반인이 FTX 파산절차 관련 정보를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크롤(FTX를 위한 청구 대리인)이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가 모두 영문으로 되어 있다.
또한 최근 법원의 ‘Bar Date(채권신고 마감일)’ 선정과 함께 FTX가 마련한 온라인 플랫폼도 한국어를 공식 번역어로 제공하고 있지 않아 IP 주소에 따른 기계적인 번역기의 작업인 것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안내와 KYC(고객신원확인) 절차가 간단한 한글로 제공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높은 언어 장벽으로 인해 한국인들이 절차를 이해하고 그 과정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그에 비해 한국보다 FTX 고객수가 적을 것으로 추산되는 16개 언어들의 경우 공식 번역이 제공되고 있다.
만일 위 보도처럼 한국인들이 최대 피해자라면 이러한 FTX측의 접근은 한국인을 차별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으며, 한국인들이 힘을 모아 피해자수와 피해총액에 대해 정보 공개를 청구하고 이러한 정책에 대해 시정을 요청해야 할 중대한 문제다.
# 피해자들에게 불리한 상황 속속 발생
뿐만 아니라, 지난 8월 7일 FTX는 법원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채권반환액을 합의해버릴 수 있도록 하는 절차방안을 미국 파산법원에 신청했고 이에 대해 16일 연방 도산관재인이 강한 반대를 제기한 상태이다.
만약 FTX측 신청이 통과된다면 700만불(한화 90억 상당) 미만의 채권을 보유한 피해자들에 대해 법원의 개입 없이 FTX가 제시한대로 한꺼번에 반환 총액이 정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크게 우려가 된다.
미국 연방 파산관재인의 반대로 기준액 자체는 처음 1,000만불에서 대폭 감소된 700만불로 FTX가 입장을 변경했지만, 이 액수가 ‘합의된 금액(settled value)’을 의미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수치라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 도산채권 거래업체로 널리 알려진 X-Claim에 따르면 FTX 예상 변제금은 채권총액의 32퍼센트 정도다. 그렇다면 단순 비례식에 의해 계산해 보아도, FTX의 제안은 채권액 2,300만불(원화 300억 상당) 이하 채권자들에게 적용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 피해자들이 포함되는 치명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이처럼 FTX가 역량을 집중해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체 파산절차를 이끌어가려는 증거들이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한국 피해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KYC만 제대로 하면 된다거나 법률 조언 없이 채권신고를 해도 아무 일이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아울러 FTX는 7월 31일 한국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채권 변제액의 총량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문서로 발전하게 될 기업재건계획 초안(Draft Reorganization Plan)을 법원에 제출했다.
문제는 이 기업재건계획 초안이 9.29 채권신고가 마감되고 FTX 피해자들이 보유한 채권의 총액이 확인되기 전에 미리 제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식 채권자 위원회와 충분한 상의 없이 법원에 제출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공식 채권자 위원회가 이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였고 FTX측에서는 사전에 충분한 상의를 했다며 시치미를 떼고 있는 상황이다. FTX가 피해자들과의 프레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기 위해 선제 공격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피해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미국 연방법에서 보장하는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FTX측에 점점 밀릴 수밖에 없다.
8월 30일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성웅규 변호사 약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1998)
·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학과 수료(2003)
· 영국 런던정경대학교 석사(MSc)(2004)
·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법학석사(LLM) 및 법무박사(JD)(2007)
· 조지워싱턴대학교 법학박사(SJD)(2018)
성웅규 변호사는 FTX 한국 피해자들을 위한 FTX Legal Clinic Project를 리드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15년 이상 변호사로 일해 왔으며, 국제 경제, 환경, 인권, 평화, 안보 등 첨예한 법적 이슈에 관한 협상에서 합의를 도출해 내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현재는 분쟁해결, 금융, 기업, 지적재산권 및 형사 등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중견 한국 로펌의 미국 현지 파트너로 한국과 관련된 해외소송 및 법률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FTX Legal Clinic Project를 개발한 미국 로펌 Advanced Legal P.C.의 매니징 파트너를 맡고 있다.
# FTX Legal Clinic Project
FTX 한국 피해자들을 위한 FTX Legal Clinic Project(www.ftxlegalclinic.com)는 FTX 파산절차에서 피해를 입은 한국의 채권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집단적으로 지켜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한 대응팀이다.
FTX Clinic Legal Project 팀은 성웅규 변호사를 중심으로 찰스 하베이(Charles Harvey. 미국 블록체인 기술협회 설립자), 데이비드 강 대표 (전략 자문, 중국 디지털 마케팅사 NDN 그룹 뉴욕 지사장) 등으로 자문위원단이 구성되어 있으며 델라웨어 변호사들이 조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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