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FTX 파산 사건을 맡고 있는 성웅규 변호사의 두 번째 기고 입니다. ▶ [기고](1) ‘FTX 파산의 성격과 한국인에게 차별적인 FTX’에서 이어집니다.
# 한국 피해자들, 반환 총액 및 시기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간과
한국 채권자 중에는 크롤 사이트에 들어가 KYC 등의 절차를 마친 뒤 가만히 있으면 챕터11 절차에 따라 변제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이 절차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실력행사를 하지 않을 경우 최종적으로 얼마나 변제를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변제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의 근원적인 문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FTX처럼 규모가 큰 사건에서는 시시각각으로 피해자들의 이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들이 발생하므로 이에 적극 대응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일례로, 과거 일본의 마운트 곡스(Mt. Gox) 사건에서는 파산 절차중 활발한 채권거래가 이루어져 거대 채권자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거대 채권자가 채무자인 마운트 곡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됨으로써 소송이 결론지어져 최종 채권액이 확정될 때까지 일반 소액채권자들에 대한 변제 시기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연될 뻔한 경우가 발생했다.
현재 FTX 법원 문서중에도 이런 채권거래에 관한 것이 많다는 현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거대 채권자들은 마운트 곡스 사건에서처럼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FTX를 상대로 채권의 존부/총액/지위 확인 소송을 벌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2014년에 파산신청을 하고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마운트 곡스 사건처럼 짧게는 수 년에서 길게는 10년 정도까지 변제시기가 늦춰질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을 한국 피해자들에게 알려야 하고 FTX 절차에서 유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채권자들이 힘을 모아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미국 법률 서비스
필자는 작년말과 올해초 몇 건의 중대형 FTX 사건 의뢰를 통해 한국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접하게 되었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통해 이 서비스를 준비해왔다.
보통 소액 채권자들의 경우 법률서비스를 받는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기 일쑤고, 채권액이 큰 피해자라 하더라도 미국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드는 비용이 워낙 높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파산 사건은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국 파산 변호사들은 대부분 시간당 수당을 선호한다. 그러나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절차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어떤 법률적 문제들이 장애물로 등장할 지 모르는 마라톤과 같은 챕터11 사건에서 공룡처럼 불어나는 시간당 수당을 내면서 버티기 어렵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FTX는 대리를 맞고 있는 설리번 앤 크롬웰(Sullivan & Cromwell LLP) 소속 150여명의 변호사들에게 시간당 800불에서 2,000불을 넘는 비용을 지불해오고 있으며 매분기 결산때마다 천문학적인 수치의 수임료 지출을 보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델라웨어 변호사들과의 공조를 위해 미국 파산 법계에서 가장 저명한 로펌과 변호사들을 접촉하며 그들의 이해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두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시간당 수당을 못박았다. 위기회피(Risk-averse)라는 그들의 원칙을 이해한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길을 택했다. 한국 피해자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더 많은 분들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면 수임료 장벽을 낮추는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고심 끝에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현저히 다른 접근법으로, 액수가 미미한 정액수임료 외에는 사건 종결시 피해자가 반환받을 금액의 일부로만 수임료를 충당하기로 하고 시간당 수당이나 비용은 청구하지 않는 조건부 수임료 계약 방식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 한국 피해자들의 대응
최근 채권신고마감일을 발표한 법원명령 통지문에는 채권신고를 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하라는 강조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무조건 채권신고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아직 채권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변호사와 상담하며 피해자가 인식하고 있는 채권총액과 FTX가 자산부채목록(Schedules)에 제시한 수치가 얼마나 다른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이미 채권신고를 하였다면 앞으로 FTX가 반대할 것에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피해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을 언급하면, 미 연방 파산법 하에서 채무자는 신고된 채권 내용에 반대(“Objection”)를 제기할 수 있다.
즉, 채권신고는 채무자의 반대를 촉발할(trigger) 수 있으며, 이 경우 채무자의 반대에 대해 채권자인 피해자가 법원이 정한 기한 내에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응답(“Response”)을 제출하지 않는다면 채무자인 FTX 주장대로 채권의 존부, 총액, 순위 등이 정해지게 되는 중차대한 절차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명령서 통지문에 채권신고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을 하라고 한 것이다.
채권신고를 이미 한 피해자 분들은 대부분 할 것은 다 했다며 방심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FTX측은 법원에 제출한 자산부채목록상 채권자의 채권액과 피해자의 채권신고액에 차이가 있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이의제기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미 채권신고를 했다면 신고 마감일인 9월 29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 서둘러 FTX측 반응을 예상하며 대비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이 과정을 절차적으로 간소화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FTX는 합의 금액 700만불(피해액으로 따지면 300억 상당) 이하의 채권자들의 채권신고에 대해 법원의 개입을 막고 일률적으로 옴니버스 타결을 하기 위해 작전을 짠 것이다.
FTX측의 이러한 도발적인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매주 크고 작은 불리한 조치들이 발표되는 상황에서 변호사의 도움 없이 그것도 공용어가 다른 한국 피해자분들께서 직접 이에 제대로 대처해 나간다는 것은 거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다.
# 한국 피해자들, 집단적·법률적 대응 중요
필자는 미국 변호사법을 따르므로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장담하는 것은 윤리법에 반하는 것이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FTX 사태에서 내가 피해자로서 과연 얼마나 반환 받을 수 있는지,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등, 피해자가 보유한 채권에 대한 FTX측의 변제 총액과 가능 시기라는 한국 피해자들의 최대 관심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이 챕터11 절차 각 단계마다 도사리고 있다는 있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함께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개별적으로 절차에 임하는 것과 한국 피해자들이 채권자단을 이루어 참여하는 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간 FTX측이 제출한 법원 문서들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듯, 피해자들이 모여 공동대응을 하게 되면 파산법원이나 FTX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논의 과정에서부터 한국인들의 의견을 묻게 된다. 이러한 건전한 실력행사는 FTX와 같이 규모가 크고 전례가 거의 없는 파산절차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데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다수의 피해자분들이 법적인 도움을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 기회를 놓치게 되는 상황이 생길까봐 안타깝다. 한국 피해자들이 본인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FTX 공식 채권자위원회도 FAQ에서 해외 채권자들은 특히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고, 크롤(Kroll)에 게시된 초기 채권신고서 작성안내문이나 최근 법원명령 통지문에서도 변호사의 조언을 받을 것을 강한 어조로 권면하고 있다.
# 성웅규 변호사 약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1998)
·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학과 수료(2003)
· 영국 런던정경대학교 석사(MSc)(2004)
·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법학석사(LLM) 및 법무박사(JD)(2007)
· 조지워싱턴대학교 법학박사(SJD)(2018)
성웅규 변호사는 FTX 한국 피해자들을 위한 FTX Legal Clinic Project (www.ftxlegalclinic.com)를 리드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15년 이상 변호사로 일해 왔으며, 국제 경제, 환경, 인권, 평화, 안보 등 첨예한 법적 이슈에 관한 협상에서 합의를 도출해 내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현재는 분쟁해결, 금융, 기업, 지적재산권 및 형사 등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중견 한국 로펌의 미국 현지 파트너로 한국과 관련된 해외소송 및 법률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FTX Legal Clinic Project를 개발한 미국 로펌 Advanced Legal P.C.의 매니징 파트너를 맡고 있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
[기고]FTX 피해자가 알아야 할 것들(1) ‘FTX 파산의 성격과 한국인에게 차별적인 FTX’ – 성웅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