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보이스피싱 수단이 가상자산과 간편송금 등으로 고도화되고 통장협박 등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관련 대책을 뒷받침할 법안들의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해 입법에 보다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통적인 계좌이체형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2019년 6720억원에 달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기 사건 역시 줄면서 2020년 2353억원, 2021년 1682억원, 2022년 1451억원 등으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가상자산거래소, 선불업 간편송금 등을 통하거나 계좌 지급정지를 악용한 통장협박 등 새로운 유형의 보이스피싱은 증가하는 추세다.
가상자산의 경우 보이스피싱 대응 강화로 범죄자금 입출금이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사기범의 자금 출금 수단으로 쓰이는 추세다. 사기범이 금융사 계좌로 피해금을 받은 뒤 가상자산을 구매해 현금화하거나 아예 피해자로부터 가상자산을 자신의 전자지급으로 전송받는 방식이다.
간편송금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은 사기범이 피해자를 속여 간편송금 계좌로 돈을 보내게 하거나 운반책의 은행 계좌로 송금을 받은 뒤 간편송금을 통해 피해금을 다른 계좌로 돌리는 식이다. 피해자가 은행 계좌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점을 악용해 지급정지 전에 돈을 빼내는 수법이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2020년 82억6000만원(305건)에서 지난해 199억6000만원(414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간편송금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피해도 2020년 14억7000만원(349명)에서 지난해 상반기 42억1000만원(2095명)으로 3배 가량 증가했다.
통장협박은 계좌이체를 통한 결제를 위해 통장 번호가 공개돼 있는 자영업자에게 사기범이 소액을 입금한 뒤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금융회사에 허위신고하는 수법이다. 보이스피싱 신고가 들어오면 금융회사는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해야 하는데 자금융통이 급한 자영업자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이때 사기범은 지급정지 해제를 미끼로 명의인에게 돈을 요구한다.
직접적인 통계는 없지만 금융회사 지급정지 요청건수가 2020년 3만3730건, 2021년 4만5321건, 2022년 1~3분기 4만1414건 등으로 점차 늘고 있어 통장협박도 증가추세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발표한 ‘제2차 금융분야 보이스피싱 대응방안’에서 가상자산거래소에도 보이스피싱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적용해 일반 금융회사와 동일한 피해구제 절차를 적용키로 한 바 있다.
가상자산거래소에도 지급정지, 이의제기, 채권소멸절차, 피해금 환급, 사기 연관 계좌정지 등이 가능토록 한다는 것인데 피해금이 가상자산으로 전환되더라도 거래소가 즉시 범인의 계정을 정지하고 피해자 구제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간편송금과 관련해서도 금융사와 페이 사업자 간에 보이스피싱 관련 계좌정보 공유를 추진하고 있다. 상대방 아이디나 전화번호 입력만으로도 돈을 보낼 수 있는 간편송금은 피해자가 범인의 계좌를 모르기 때문에 페이 사업자로부터 송금 확인증을 받아야만 하는데 이런 절차에만 수일이 소요된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 신고시 선불업자에게 금융사에 대한 금융거래정보 제공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신속한 지급정지가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통장협박과 관련해서도 피해자의 계좌잔액 중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들어온 돈으로 판단되는 액수에서만 지급정지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회사가 해당 계좌가 피해금액 인출에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일부 지급정지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통장협박을 당한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돈이 입금됐더라도 해당 계좌가 피해금액 편취를 위해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 자료로 소명하면 이의신청도 받아준다.
그러나 이같은 보이스피싱 대응방안에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에서 관련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선불업 간편송금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에 대응하기 위한 이학영의원 대표발의안, 가상자산 보이스피싱 범죄에도 피해금 환급 등이 가능토록 하는 김희곤의원 대표발의안 등의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상임위에 장기간 계류돼 있다.
또 금융회사와 간편송금업자간 사기이용계좌 관련 정보 공유, 통장협박 피해자 계좌 일부 지급정지 허용 등의 내용을 당정이 논의해 윤창현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이 지난 7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본격적인 심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 선불업 간편송금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른 지급정지 제도를 악용한 통장협박 범죄의 경우 아직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신속한 논의와 대응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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