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를 필두로 신흥국 통화가 자유낙하를 연출하고 있다. 금리인상부터 중앙은행 총재 교체, 국제통화기금(IMF)까지 각국 정부가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네 차례의 금리인상을 예고한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이 연말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기로 결정, 값싼 유동성 공급이 종료된 상황과 맞물려 신흥국 자산에 대한 경계감을 부추기고 있다.
15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신흥국 통화 가치의 등락을 반영하는 MSCI 이머징마켓 통화 지수가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아울러 지수는 지난 2016년 12월 이후 50일 이동평균선을 밑돌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IMF로부터 500억달러의 차관을 지원 받는 데 합의한 데 이어 중앙은행 총재를 교체하기로 했지만 페소화 급락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JP모간과 도이체방크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 루이스 카푸토가 통화정책 수장을 맡을 것이라는 소식에 상승 탄력을 보였던 페소화는 하락 반전, 달러화에 대해 장중 6% 이상 급락하며 사상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달러/페소 환율은 28페소를 훌쩍 뛰어넘었다.
페소화 급락은 채권을 포함한 아르헨티나 자산 가격을 강타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년 전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행한 100년 만기 국채는 이날 액면가 1달러당 79.1센트에 거래됐다. 초장기 국채 가격은 지난해 10월 액면가 아래로 떨어진 이후 가파른 하강 기류를 연출하고 있다.
상황은 다른 이머징마켓 통화도 마찬가지다. 브라질 헤알화가 장중 1.8% 가량 급락하며 4일 연속 내림세를 나타냈다. 최근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에도 헤알화 약세는 멈출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멕시코 페소화가 1% 선에서 하락했고, 터키 리라화 역시 0.5% 가량 떨어지며 한 주 사이 6%에 달하는 낙폭을 기록했다. 12%를 웃도는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적자 확대, 여기에 정치권 리스크가 투자자들의 ‘팔자’를 부추기는 양상이다.
투자은행(IB) 업계는 신흥국 통화의 추가 하락과 이에 따른 자산시장의 충격을 경고하고 있다. 태국 바트화가 이날 1.5% 급락하는 등 재정이 비교적 탄탄한 신흥국으로 통화 하락이 전염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화 상승에 따른 충격 이외에 주요국의 무역 마찰과 관세 전면전 역시 신흥국의 경제 펀더멘털과 통화 가치에 악재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가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자 중국 역시 자동차와 농산물을 포함한 545개 미국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아시아 주요 통화가 달러화에 대해 일제히 1% 내외의 하락을 나타냈다.
골드만 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페소화가 연말까지 13% 추가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미즈호은행의 시로키 시게히사 이사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신흥국 통화 전반에 걸친 하락 압박이 이어질 것”이라며 “달러 부채가 많고 외환보유액이 빈약하며,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큰 국가의 충격이 특히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신흥국 중앙은행이 금리인상 압박에 시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캡이콘 히스토리의 닐 셔링 이코노미스트는 투자 보고서에서 “주요 신흥국 통화가 2개월 사이 10% 급락했고, 인플레이션은 목표치를 웃돌거나 이에 도달한 상황”이라며 “멕시코와 브라질, 남아공 등 주요 신흥국이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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