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릭 “홍콩 親암호화폐 정책의 핵심 변수는 미래에도 안정적일 것이냐” 언급
“한동안 시간은 홍콩 편에 서 있을 것”
[블록미디어 스탠리 최 기자]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은 14일 싱가포르 토큰2049 부대행사인 웹3 트랜지션 서밋에 참석해 “작년 말부터 홍콩은 암호화폐 친화적인 입장으로 전환했지만 홍콩에 진출하려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홍콩의 親암호화폐 정책이 얼마나 안정적일 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당하고 올바른 지적이다.
홍콩은 지난 6월 1일부터 암호화폐 거래소 라이선스 발급을 시작했고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도 열심히 준비중이다. 최근 홍콩투자청 핀테크 부문 총괄 량한징(梁瀚璟)은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말해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우호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더블록의 보도에 따르면 비탈릭은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홍콩을 본거지로 삼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싶어할 것”이라면서 “이는 지금의 우호적인 태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지 모를 규제적, 정치적 혹은 모든 위험 상황에서도 홍콩이 계속해서 암호화폐에 우호적일 거라는 확신”이라고 설명했다.
비탈릭은 “나는 홍콩을 잘 알지 못한다. 최근 홍콩과 본토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분명 지금은 매우 우호적이다. 그러나 내가 묻고 있고 누군가 궁금해 할 가장 큰 질문은 ‘우호적인 수준이 얼마나 안정적이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2021년부터 암호화폐 거래와 채굴을 일체 금지하고 있는 반면, 홍콩은 올들어 암호화폐 기업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줬고 심지어 은행들에게도 협력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정확히는 2022년 10월 홍콩 당국이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명분하에 일련의 암호화폐 관련 정책 성명을 내놓으면서다. 그리고 작년 12월 홍콩 입법회(우리의 국회)는 올해 6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업체에 대한 완전한 라이선스 제도 도입 관련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홍콩 정부가 암호화폐를 계속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묻자 비탈릭은 개인적인 판단은 하기 어렵다면서도 “이것이 핵심 변수이고 바로 여기에 도전이 있다”고 언급했다.
# 중국-홍콩, 정치와 경제 어떻게 달리 볼 것인가
비탈릭이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의 본질이나 기술 관점에서 벗어나 특정 국가의 정책에 대해 견해를 밝힌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에 그의 발언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비탈릭의 우려처럼 홍콩의 암호화폐 친화적인 정책이 언제 달라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난 2019년과 2020년 홍콩에서는 거센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홍콩 입법회는 도주범죄인 및 형사법 관련 법률 개정안을 도입했다. 소위 ‘인도법’이 시행되면서 홍콩의 민주 인사가 언제든 본토로 끌려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국의 대응은 포괄적인 국가 보안법에 해당한다. 그래서 홍콩의 정치적인 안정성에 대해선 여전히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의 운신 폭이 크게 좁아졌다. 중국은 세계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없어도 홍콩은 여전히 그런 역량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영사 블랙록이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신청을 할 정도로 가상자산은 이제 위험 자산의 한 축에 포함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고 규모도 커졌다. 그러다 보니 암호화폐 금지 정책을 도입한 중국도 이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홍콩은 그래서 중국의 ‘통풍구’다. 홍콩이 아니라면 중국은 본토인들에게 직접 가상자산의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투기와 사기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그러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막아버리면 중국 투자자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해외로 빠져나가버릴 것이다. 미국도 관련 업계와 규제기관은 물론, 의회까지 나서서 이해당사자 간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규제기관이 과도하게 통제하고 규제를 가하면 미국 업체들이 해외로 이전할 것이고 혁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미국 업체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한방에 모든 것을 정리하는 건 실로 어렵다.
홍콩은 그래서 ‘테스트’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홍콩에서 앞으로 몇 년간 가상자산 거래를 허용하면서 글로벌화된 표준을 정착시킨 뒤 이를 다시 본토로 이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다.
테스트를 거쳐 현지화에 문제가 없는 지를 확인하는 과정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미국과 선진국에서 다양한 규제가 마련될 것이고 새로운 상품에 대한 정의와 승인도 잇따를 것이다. 가령 비트코인 현물 ETF를 미국이 승인하고 자산 시장 클래스의 하나로 당당히 등장하면 중국도 시장의 충격없이 슬그머니 받아들이기 좋을 것이다.
홍콩은 그래서 ‘당분간은 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 글로벌 금융 허브를 재탈환하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주류 금융에 가상자산이 포함되는 순간, 최소 중국의 홍콩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야 하고 그럴 때 중국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중국 정부는 인내할 가능성이 크다. 홍콩 당국이 가상자산 관련 정책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안정성을 가지고 親암호화폐 정책을 펼쳐나갈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 “언제든 노마드가 될 각오가 되어 있다”
9월초 코리아블록체인위크(KBW)에서 만난 중국 업체 관계자에게 어디에 살고 있냐고 물어보면 현재 거주지와 함께 ‘노마드(Nomad)’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는 일이 중요하지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암호화폐 금지 정책으로 중국을 떠난 본토인들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다. 이들은 중국이 우호적으로 돌아서면 고향으로 돌아가 사업을 펼치고 그런 환경이 오지 않으면 해외에서 계속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
홍콩을 기웃거리는 중국 프로젝트는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홍콩의 행보에 은근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이나 두바이나 비싼 물가를 감수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책이 변했고 자국어를 써도 되는 홍콩이라면 금상첨화다.
금융 산업이 발달된 홍콩에서 가상자산 거래가 활발해지면 본토 중국인들이 즐겨 찾게 되고 투자가 활발해지면 산업에도 확장 공간이 생긴다. 그렇다고 중화권 업체 관계자들이 홍콩이 전세계를 압도하는 블록체인 산업을 이뤄내리라는 생각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노마드로 살아가는 데 이미 익숙해진 중화권 종사자들에게 홍콩은 고향과 가까운 지역에 마련할 또 하나의 터전이 될 수 있다. 그러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 본토로 돌아가 사업을 영위하고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 사족
비탈릭은 지난 몇 주 사이 인도,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는 물론 팔라우까지 찾아 강연도 하고 개발자 커뮤니티와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블록체인위크(KBW)에 그는 화면으로만 모습을 비추고 직접 오지 않았다. 저스틴 선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꺼린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비탈릭과 저스틴 선은 싱가포르 최대 행사인 토큰2049에 직접 참석했다.
흥미로운 것은 비탈릭이 더블록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몇 주 동안 방문했던 아시아 개발자 커뮤니티의 참여 수준이나 연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일본과 대만 등 여러 지역에 기반을 둔 ZK(영지식증명 관련 기술)과 개인정보 보호 솔루션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숫자만 봐도 정말 인상 깊었다.”
비탈릭은 기술에 매우 천착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에게 한국이 제대로 된 규제나 제도 조차 없이, 개발도 활발하지 않은, 그래서 찾을 필요도 없는, 그저 코인 거래만 왕성한 국가로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지금 우리는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
[KBW 현장에서] 해외 VC는 “한국 프로젝트 찾아달라”는데 정작 국내 VC·거래소는 무관심… “해외 토큰들의 파티장 되지 말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