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최창환 선임기자] 경제위기론자들은 정확하지 않다. 늘상 위기 요인을 지적하지만 경제가 그리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망가져도 수십 년에 한번 정도 겪는 일이다.
그래서 듣는 말이 ‘고장난 시계’라는 비아냥이다. 멈춰선 시계도 하루 두 번은 시간을 맞추기 때문이다. 위기 요소가 많이 발생해도 정부가 재정과 금융 정책 등을 통해 이를 막아내고 경기회복을 통해 위기의 요인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요즘 고장난 시계가 맞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 경제의 체질이 약회된 상태에서 대외 여건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를 막아야 할 정부가 도리어 위기를 키우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다.
경제는 부채의 확대와 축소 과정을 경기변동과 함께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부채로 인한 경기 호황이 끝나고, 채무자의 부채상환능력 악화로 건전한 자산까지 팔기 시작하면서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찾아온다. 이를 주장한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이름을 따서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라 부른다.
부채 확대로 인한 거품. 채무자의 부채상환능력 악화. 이미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저축은행 사태, 새마을금고 부실화, PF 연체율 상승, 은행 연체율 상승 등 뉴스에 나오는 위기 징후들이다. 부동산발 위기 징후들이다.
기업들의 이익도 줄어들고 부실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정부가 올해 세수전망치가 59조 1000억원이 부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 기업, 가계 등 경제 주체 3곳이 모두 부실화되고 있다.
위기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자산가치가 폭락해 민스키 모멘트로 이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착륙 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몫이다. 그런데 도통 신뢰가 가지 않는다. 상황은 악화하는데 거품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착륙을 얘기하지만 경착륙도 못하고 추락하는 민스키 모멘트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걱정하게 된다.
한국 경제의 실력과 대외 여건부터 살표 보자. 한국은 수출에 의지해 먹고사는 나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은 100.5%로 전년 대비 16.6%포인트 상승했다. 2013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100%를 뛰어넘었다. 미국은 31.4%, 일본은 37.5%, 프랑스는 66.1%다.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다. 수출을 해서 수입도 하고 먹고 사는 나라다.
어디다 수출하나. 중국과 미국이 주종을 이룬다. 두 나라 모두 사정이 좋지 않다. 중국은 부동산발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미국도 은행위기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금리인상에 따른 미국채 가격하락으로 은행들의 평가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도 33조 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카드신용이 늘어나고 연체율은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빚으로 소비를 하고 있는데 한계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우리 수출품을 사줄 중국과 미국의 소비자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재만 덜 팔리는 게 아니다. 컴퓨터를 덜 사면 반도체가 덜 팔리고 상품을 나를 배도 덜 팔린다. 우리 주요 수출 품목들이다.
수출이 줄고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는 뉴스는 이제 일상이 됐다. 놀라지도 않는다. 큰일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내수는?
좋을 수가 없다. 소득이 감소했다. 지난 2분기 가구소득은 479만 3000원으로 1년전보다 0.8% 줄었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소득은 3.9% 감소했다. 실질소득이 고물가로 4분기 연속 감소했다. 소득이 줄도 물가가 올랐다면 소비는 당연히 줄 수 밖에 없다.
안팎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돌파구가 없는 게 더 문제다. 새로운 성장산업도 없다. 블록체인 등 신 산업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 지 철학과 비전도 없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주택정책은 위기를 키우고 있다. 전매제한과 대출억제 등 투기억제 정책의 전면 해제가 가뜩이나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를 더욱 악화시켰다.
지난 3월까지 감소하던 가게부채가 4월을 고비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8월중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달보다 6조2000억 원 증가했다. 올 초만해도 높아진 금리에 빚을 갚는 차주가 더 많았지만 4월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7월 가계대출 증가액이 5조 3000억원이다. 두 달 동안 증가 액만 11조 5000억 원에 달한다.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가격을 지탱하기 위한 정책이 대출규모를 키웠다. 뒤늦게 조정했으나 리스크만 더 키우고 정부에 대한 신뢰만 떨어졌다.
수출도 줄고 소득도 주는데 빚으로 집값만 올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젊은 세대들은 평생 모아도 내집마련이 힘들다고 포기하고 있다. 아니면 영끌로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집을 사고 있다. 50년 대출이면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경우 은행에 50년간 원리금을 내야하는 고리의 월세살이를 하는 것이다. 은행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거품 붕괴시 대출을 받은 이들이 고스란히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된다. 미래가 있겠는가. 이러한 약탈적 금융관행을 정책이란 이름으로 실행하는게 참 한심하다.
은행도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대출을 받은 수많은 이들이 대출불능 사태에 빠지면 은행도 파산을 피할 수 없다. 한은은 여러차례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금융시스템 불안을 경고해 왔다. 그러면서 금리는 계속 동결하고 있다. 연착륙을 위한 정부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행위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금리 억제로 대출을 쉽게 해준 것은 그래도 한은의 책임이다. 한은은 말로 하는 곳이 아닌 금리결정권을 가진 곳이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구조조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사태를 이연시키면 암계점에 도달해 폭락하는 민스키 모멘트가 올 수 있다. 망하는 건설업체가 나와야 거품 때 비싼 가격에 사 놓은 토지가격이 정상화된다. 그래야 땅 위에 짓는 집값도 정상화 된다. 지금처럼 부동산에 돈을 풀어 건설업체가 부담할 비용을 가계의 빚으로 넘기는 것은 부당한 정책이다. 경제가 폭망하거나 아니면 젊은이들의 내집마련의 꿈을 짓밟는 것이다.
“상저하고, 한국 경제 문제 없다, 은행시스템 건강하다, 새마을 금고 위험하지 않다.”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적당히 경제를 운영하며 문제를 뒤로 넘기는 말들이다.
현상을 정확히 알리고 어렵지만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이 폭력적으로 해결한다. 모든 부담을 국민들이 안게 된다. 중산층과 서민들중 몰락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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