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진석 기자] 지난 1년은 암호화폐 시장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2021년은 코로나19를 맞이한 각국의 확장 재정 속에 신기루와 같은 상승장으로 기록됐다. 다음 해인 2022년은 이런 풍족함을 더 크게 부풀려보려는 갖가지 장치들이 붕괴되면서, 말 그대로 현실에 부딪힌 한 해가 되었다.
2022년 10월 1일의 기사를 돌아보면, 비트코인이 2만 달러선으로 다시 올라섰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 시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지속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가 고조되는 때였다.
달러화 가치는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재정정책 실책 속에 급락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암호화폐 시장은 FTX의 파산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가 그랬다. 2022년은 크립토 시장에 팽배했던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는 해였다면, 2023년은 규제의 해가 될 것이라고. 그래서 차근차근 재시작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나는 의견이 조금 달랐다. 과거의 달콤함을 맛본 소수가 그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소수가 제시한 이른바 ‘창의적인 설계도’의 대부분은 결국 다수의 부채로 전가되어 왔지 않은가. 암호화폐 시장에 이성적 판단과 윤리적인 비즈니스 의식으로 성공하는 것이 가능한가?
2023년에 규제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소수의 폭주를 예방하고 다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모두가 2023년의 크립토 시장에 기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장에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다. 추석 연휴를 맞아 그 플레이어들을 돌이켜봤다. 특히 규제와 관련해서는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었다. 다만 그 사람이 나쁜 소수인지, 좋은 소수인지, 영 이상한 사람에 속하는지는 매우 주관적인 (내 맘대로) 판단이 따랐다.
보통 여러 인물 기사를 쓸 때 그들을 나열하기 위해 사용하는 영화 제목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대가 세르지오 레오네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직역 버전으로 김지윤 감독이 오마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 제목에 맞춰 인물을 꼽자니 세 놈(?)에 겹치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 게리 갠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66세)
이 사람은 각자 관점에 따라 나쁜 놈인가? 혹은 어쩌면 좋은 놈일수도 있다. 어쩌면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게다가 흔히 ‘놈놈놈’ 으로 불리는 그 영화 원작의 국내 상영 제목은 ‘석양의 무법자’다. 잘 어울리지 않는가?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1957년 볼티모어에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66세이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학사와 와튼스쿨 MBA를 취득했으며, 18년을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부 차관으로 관직에 오른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지냈으며, 지난 2021년 4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그를 SEC 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임기는 5년, 2026년까지)
그는 취임 초기부터 SEC의 암호화폐 규제의 주도권 형성에 열을 올렸다. SEC의 암호화폐 관련 인력 증원을 의회에 요청하고 시장을 서부 시대 황무지(Wild West)에 비유했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암호화폐가 사기와 시장 조작이 만연하다고 평가하고 거래소의 등록과 규제, 암호화폐를 증권으로서 감독할 것을 천명했다.
결국 그는 지난 6월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미등록 증권거래 혐의로 기소하고, 리플랩스, 그레이스케일, NFT프로젝트 등을 상태로 법정 다툼을 이어나간다. SEC의 의도는 명확했다 “내 관할권에서 허가 없이 사업을 했다”는 것이었다.
▲ “겐슬러, 그는 대체 왜?” “제롬 파월 영향력이 부럽나?”
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게리 겐슬러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과 경제를 주제로 강의를 했고 스스로 ‘낙관론자’라고 밝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가 암호화폐를 압박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스스로 암호화폐 낙관론자라더니 SEC 위원장 생활 2년 만에 ‘공공의 적’이 됐다. 업계 누군가는 게리 겐슬러가 제롬 파월의 영향력이 부러웠나보다라고 조소를 날리기도 했다.
사실 그는 어쩌면 암호화폐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특히 비트코인을 좋아할 것 같다. 그는 지난해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상품”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나머지 토큰(알트코인)은 거의 모두 증권”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SEC에 등록되지 않은 증권을 거래하는 거래소를 도박장에 비유했다.
그에게는 이더리움도 ‘증권’이다. MIT 교수 시절 그는 “이더리움이 발행됐을 때 하위 테스트(증권성 판별)를 통과했다면, 이더리움도 증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더리움이 검증 방식을 작업증명에서 지분증명으로 변경한 뒤에는 투자계약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그는 SEC 조직에 충성한다
그의 눈에는 증권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이 분명하고, 비트코인은 이를 넘지 않았거나 판별할 주체(하위 테스트 상)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트코인주의자이거나 증권시장에 익숙한 사람, 금융업계 사람에게는 좋은 놈일 수도 있다.
‘사업을 주도하는 사람과 프로젝트를 알리는 사람이 존재하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토큰이 제공되며, 대중은 수익을 기대한다’ 이것이 토큰이 증권이 되는 이유이며, 증권시장은 그 시장 자산의 유입을 기대한다.
반면 그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쏘고 나쁜 놈으로 몰아 세우는 사람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와 그의 조직이 보여주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증권거래를 감독하는 규제 당국은 전통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두려워하거나 반대하면서도, 암호화폐 시장 규제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모호’하게 군다. 민주당 소속 겐슬러를 해임하고 싶어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그가 규제 지침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규제만해 미국 내 크립토 산업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예로 겐슬러는 과거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더리움은 증권인가”라는 공화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겐슬러는 교수 출신 답게도 암호화폐와 증권법 관련 설명을 원론적으로 늘어놓았다. 또 최근에는 “포켓몬 카드도 증권인가”라는 의원의 질문에 “증권성 판단에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바이낸스나 코인베이스 거래소에 포켓몬 NFT라도 있었다면 증권이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 조직에 부담되는 ‘모호성’ 언제까지
이러한 모호한 입장은 그가 속한 조직에도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SEC는 7월 리플랩스와의 소송에서 상처 뿐인 반반 판결을 받았다.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ETF 전환 소송에서는 사실상 패배했다. 당시 판결을 내린 법원 판사도 “SEC의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판단”이라며, 국가 금융 규제기관의 주장을 일축했다.
게리 겐슬러, 그가 현재의 ‘이상하고, 나쁘고, 좋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최종 결정권은 SEC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시그널이 분명해졌다. “SEC의 권한이 무소불위가 아니다”라는 사실과 그 위세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임기는 오는 2026년까지다. 암호화폐 업계는 그런 겐슬러 위원장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왜, 언제” 할 것인지 정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겐슬러 위원장이 정말 조직에 충성하고 조직을 위해 일한다면, 남은 2023년 업계 사람을 두루 만나 보길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