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정필 최홍 기자 = 국내 리딩 금융그룹인 KB금융이 최근 현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를 비판하는 리포트를 올렸다가 삭제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금융당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최근 ‘은행의 이익 처분 방식과 임직원 보수 관련 비판에 대한 소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서두에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금리 상승기에서 손쉽게 벌어들인 이익을 미래 부실을 대비하거나 생산적인 곳에 사용하기보다는 주주와 임직원의 부를 늘리는 데 몰두한다며 이익의 처분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의 수위를 높여 왔다”고 전제했다.
이어 본문에서 “은행 등 금융업 임직원의 보수 수준이 타 산업 대비 높은 것은 고부가가치의 산업 특성상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회사 입장에서 높은 수준의 급여 제공과 적극적 성과 공유는 우수한 인력 유치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보고서는 현재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KB금융 측은 내부용 문건이 잘못 올라가 내린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이 파일은 외부공개용이라고 명기돼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KB연구소는 앞서 다른 보고서에서도 현 정부의 금융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고금리 시기에 이자장사로 내부잔치를 벌이고 있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연구소는 ‘한미 은행 간의 수익구조 및 수익성 비교 검토’ 보고서에서 “은행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해법을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을 통한 경쟁 시스템의 강화로부터 찾기보다는, 은행이 공공적 제도로서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상업성의 추구가 보장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과의 균형을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 산업간 자금을 안정적으로 융통해줘야 하는 금융산업의 특성상 과열경쟁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것이 명약관화하다”면서 “은행산업 내 경쟁 증대로 인한 효율성 향상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미래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한 완충 역할이 약화될 수 있어 은행시스템의 안정성 차원에선 부정적”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작심 발언을 두고 업계에선 오는 11월 윤종규 회장의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KB 경영진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직언들을 우회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정책에 대한 발전적인 비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번 리포트 삭제 건이 가뜩이나 살얼음판 같은 금융당국과 KB금융간의 관계를 더 불편하게 만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시장에서는 차기 KB 회장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문인 허인 부회장이 유력하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사외이사로 구성된 회장추천위원회의 선택은 ‘리틀 윤종규’라 불리웠던 양종희 부회장이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KB금융의 이번 보고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감지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관치금융 비판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을 상대로 지배구조 개편과 상생금융 행보에 나섰던 만큼, 이에 대한 반기로 읽힐 수 있어서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마치 건전성 유지를 위해 은행의 대규모 이익이 필요한 것처럼 읽힐 수도 있는데 국내 은행이 해외 은행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자본적정성이나 건전성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은행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취지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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