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10월은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시즌입니다. 기업 총수와 경제인을 무리하게 출석시켜 망신을 주는 국정감사 관행이 반복되곤 하는데요. 기업들은 국정감사 시즌만 다가오면 바짝 긴장하고 논란을 피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대관 담당들은 의원실을 돌아다니느라 분주하죠.
이런 10월마다 각종 논란을 빚는 기업이 있습니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 ‘카카오’인데요. 3년 연속 국정감사 시즌만 다가오면 카카오가 대형 리스크가 터지면서 ‘10월 징크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지난 2021년은 카카오가 코로나 팬데믹에 힘 입어 고속성장을 하면서 사업을 적극 확장하던 시기입니다. 문어발,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카카오페이 전 경영진들이 스톡옵션을 기습적으로 전량 매도해 ‘먹튀’ 논란을 빚기도 했죠. 같은 시기 카카오모빌리티가 눈치없이 서비스 가격을 올리다 반발을 샀습니다. 때마침 ‘국감 소재’ 고갈에 목말라 있던 정치권은 카카오를 지목했고, 본격적인 때리기에 나섰죠. ‘혁신의 상징’인 카카오가 하루 아침에 ‘국민 밉상’ 이미지로 바뀐 것도 이 때입니다.
당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김범수 창업자가 지난 2018년 이후 3년 만에 직접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각종 논란에 대해 해명했죠. 또 골목상권 사업 중단을 선언하고 소상공인 등과 상생안을 약속했습니다.
이런 논란은 한때 성장동력이던 스타트업식 경영전략, 즉 계열사별 책임경영·기업공개(IPO)를 통한 확실한 성과보상 정책이 이미 대기업이 된 카카오에겐 ‘맞지 않는 옷 아닐까’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특히 공동체의 자율 경영체제가 ‘독’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입니다.
김범수 창업자는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공동체 얼라이먼트센터(CAC)를 만들고 경영진을 물갈이 합니다. 남궁훈 전 카카오게임즈 대표를 구원투수로 발탁해 카카오를 이끌게 하고 문어발식 확장 비판을 수용해 계열사 수를 줄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렇게 잘 수습되는가 싶었지만 지난해 10월 또다시 카카오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이른바 카카오 먹통 사태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15일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카카오톡을 비롯해 카카오의 서비스 전반이 먹통이 되어버리는 사태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남궁훈 전 대표가 CEO직에서 물러났고 전국민 사과를 했지만 먹통 후폭풍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는 카카오 먹통방지법이 만들어지는 등 플랫폼 규제가 본격화됐습니다. 김 창업자는 그해 국정감사에 출석해 다시 사과해야 했습니다.
올해 역시 가을로 접어들면서 카카오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카카오의 전 재무그룹장이 법인카드로 1억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사적으로 결제했다가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고 남궁훈 카카오 전 각자 대표가 올 상반기 스톡옵션 행사로 94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둔 뒤 퇴사한 일로 도덕적 비난을 받았습니다. 실적 부진에 계열사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노사 갈등도 커졌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사고가 또 발생했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다음 스포츠의 클릭 응원 서비스에서 중국 응원이 과다 클릭 되면서 사이버 여론 조작 의혹이 제기됐고, 이는 정부여당의 ‘가짜뉴스’ 규제정책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정부는 여론조작을 막겠다며 범부처 TF(태스크포스)까지 발족했습니다.
그래도 “올해 국감장까지 3번 연속 김범수 창업자가 불려 나가지 않은 게 어디야”라며 카카오 내부에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던 찰나 상황은 180도로 급반전됩니다. 국감이 진행되는 와중에 금융감독원이 칼을 빼들었습니다.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SM) 인수 경쟁 과정에서 주가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가 검찰에 구속됐기 때문입니다.
수사의 칼날은 곧바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로 향하고 있습니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김 창업자를 금감원에 출석하라고 통보했습니다.
특사경이 카카오 경영진들을 정조준한 이유는 카카오와 하이브 사이에 벌어졌던 SM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있었던 시세조종 관련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재현 투자총괄 대표를 구속한 데 이어 김 창업자까지 소환통보한 것은 김 창업자가 시세조종을 보고받았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카카오 창립 이래 사상 초유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투자 총책임자의 구속으로 당장 카카오의 신사업 투자와 SM과의 협업 전략에 급제동이 걸렸습니다. 만약 김 창업자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되면 적격성 문제로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지위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한때 15만원을 돌파했던 카카오 주가는 결국 4만원을 깨고 내려앉았습니다.
지금 카카오의 위기는 예년과 결이 사뭇 다릅니다. 일각에선 지금처럼 카카오가 사면초가에 빠진 결정적 이유로 현 정권의 곱지 않은 시선을 꼽기도 합니다. 전 정부 수혜를 받은 ‘좌편향 포털’ 낙인이 그것인데요. 지난해 김 창업자의 케이큐뷰홀딩스(KCH)가 금산분리 원칙을 위반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법인 고발을 당한 일부터 포털 다음 여론전 방치 논란, SM 인수과정에서의 시세조종 의혹 조사 등 부처들의 칼끝이 카카오를 겨냥하고 있는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카카오 안팎에선 “사안 대비 조치들이 과한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옵니다. 시세조정 의혹과 관련해서 카카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합법적 장내매수였으며 이해 당사자들의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이게 과연 사법구속까지 시킬 사안이냐”고 호소합니다.
‘카카오 때리기’에 대한 정치적 해석과는 별개로 카카오 내부적으로 리더십 부재가 위기를 자초했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여러 차례 리더십 체제 변화 선언에도 제대로 작동한 적 없는 컨트롤타워에 일부 전현직 경영진들의 잘못된 상황 인식과 개인플레이, 그로 인한 유발되는 쓸데없는 이미지 훼손이 반복되면서 외부에서 ‘과도한 칼날’을 들이밀 수 있는 명분을 스스로 제공했다는 얘기입니다.
카카오를 둘러싼 위법 논란은 앞으로 진행될 법정소송을 통해 명명백백 가려질 것입니다. 검찰 수사 내용대로 위법 행위가 드러날 수도, 반대로 별 것 아닌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어떤 것도 속단하긴 이른 시점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용자들과 투자자들이 진정으로 신뢰하는 기업으로 쇄신하지 않는 한, 카카오의 10월 위기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다면, 설령 어떤 정치적 외압이 들어와도 그들이 플랫폼을 지켜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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