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금융당국이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가운데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선거용 대책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현재 대형 종목에만 공매도가 가능한 것과 관련해 공매도를 완전 허용하는 ‘정상화’에 방점을 두던 금융당국이 돌연 한시적 전면금지로 방향을 급선회한데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은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와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의 불법 공매도에 따른 시장 신뢰 저하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총선을 앞둔 여당의 압박 때문에 공매도 전면금지에 나선 것이란 시각이 많다.
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공매도 전면금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있었던 지난 2008년 10월과 2011년 8월, 그리고 코로나19에 따른 팬데믹 공포가 있었던 2020년 3월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코로나19 당시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는 2차례 연장을 거쳐 현재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대형종목에만 제한적으로 공매도 금지가 적용되고 있다.
공(空)매도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는 뜻으로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이다. 향후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실제 주가가 하락하면 같은 종목을 싼값에 되사서 차익을 얻는 투자기법을 말한다.
◆당초 전면재개 검토했던 당국…與 압박에 전면금지로
공매도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오랜 논쟁거리였다. 이른바 동학 개미들은 공매도가 기관과 외국인에 유리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반발해 왔다.
개인의 경우 증권사가 보유한 종목에 한해서만 공매도가 가능하고 대차 수수료도 높지만 기관은 주식을 빌릴 수 있는 기관이 다양해 사실상 모든 종목의 공매도가 가능하고 수수료도 개인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제도적으로도 공매도 담보비율이 개인은 120%인 반면 기관과 외국인은 105%에 불과하고 개인의 공매도 상환기간은 90일이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서로간의 협의에 따라 무기한 연장이 가능했다.
여기에 공매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라는 개인 투자자들의 뿌리깊은 불신이 더해지면서 아예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는 개미들도 많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공매도가 다양한 투자전략의 하나로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주요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이자 가격발견이라는 순기능이 있어 공매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개미들의 원성 속에서도 당초 공매도 전면허용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31일 “금융당국도 공매도를 정상화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비슷한 시기 외신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공매도 규제 해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미 표심잡기가 급했던 여당이 공매도를 타깃으로 잡으면서 금융당국의 기류도 변했다.
국내 증시가 다양한 대내외 악재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글로벌IB들의 불법 공매도가 처음 적발되자 국회 ‘공매도 제도 개선 국민청원’이 5만명을 넘어서는 등 공매도 폐지 여론이 비등해졌고 여당은 총선 전략 차원에서 공매도 한시금지로 금융당국을 압박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도 지난달 2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매도 한시적 중단을 요구하는 여당 의원 질의에 “개인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시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가장 투명하고 합리적이고 필요한 제도를 원점에서 모두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벗어나…외국인 이탈 우려도
금융당국은 이번 공매도 한시적 전면금지 조치의 배경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가뜩이나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등대되면서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해외 주요국 대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최근 홍콩계 BNP파리바와 HSBC 등 글로벌IB의 560억원 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되는 등 관행화된 불법 공매도로 시장 신뢰 저하가 우려된다는 점도 이유로 제시됐다.
김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지금 상황에서 공매도를 금지한 이유는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이고 해외 주요 IB들의 관행적인 불공정 거래가 계속되는 한 자본시장에서의 공정한 가격 형성이나 거래 질서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등 앞선 세 차례의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와는 달리 이번에는 경제위기와 관계 없는 조치라는 점에서 총선용 대책이란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제적 흐름과도 무관한 한국만의 ‘튀는 조치’여서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도 당분간 요원해졌다. 공매도 전면 재개가 이뤄져야 MSCI 선진국 지수 편입도 가능하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올해 주식시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주가조작 사태와 관련해 거품 종목의 주가를 떨어트리는 공매도의 순기능 실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같은 우려들에 대해 김 위원장은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관행적인 불법행위를 그대로 놔두고는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며 “세계적인 흐름도 당연히 보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상황을 고치지 않고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건실하게 발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중장기적으로는 외국인 투자자들한테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 전면금지 조치를 유지하면서 불공정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공매도의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정책 일관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공매도 전면금지에 나선 까닭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면서도 개미투자자 여론까지 만족시킬 만한 묘수찾기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감언론 뉴시스 ephite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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