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정필 기자 = #. 직장인 이수진씨(33)는 얼마 전 환전수수료 우대혜택을 제공하는 은행의 계좌를 만들어 300만원어치 엔화를 샀다. 환율이 더 떨어지면서 이씨의 성화에 남편도 최근 200만원어치 엔화를 추가로 환전했다. 이씨는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일본 여행을 가서 쓸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환율이 다시 올라갈 것 같아서 투자 겸 바꿔뒀다”고 말했다.
역대급 엔저 현상이 나타나면서 시중은행 엔화예금과 환전창구로 고객 수요가 쇄도하고 있다. 이씨 부부의 경우처럼 투자나 여행자금 목적으로 엔화를 매입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모습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7일 기준 1조1407억엔(약 9조92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1조489억엔에서 일주일 새 918억엔(약 8000억원) 불어난 액수다. 이달 들어 일평균 1000억원 넘게 급증하면서 8~9일 기준 집계는 1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엔화예금은 올해 1월 7583억엔에서 4월 5978억엔까지 감소한 바 있다. 이후 증가세로 전환해 9월 1조335억엔으로 1조엔을 돌파했다. 엔화가 900원대에서 86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저점 매수세는 더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 4월과 비교하면 6개월여 만에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원화를 엔화로 바꾸는 환전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5대 은행이 원화를 받고 엔화를 지급한 엔화 매도액 규모는 올 1~10월 누적 3228억엔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엔화 매도액인 801억엔 대비 4배에 이르는 액수다.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와 엔저가 맞물려 일본을 찾는 국내 여행객이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류진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국채 금리의 급락에도 불구하고 엔화 약세 현상은 지속되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급락 이후 숨고르기를 보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100엔 환율이 860원대 수준까지 급락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류 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860원대를 기록한 것은 중국 붐이 한창이었던 2008년 이후 처음”이라며 “엔화와 원화 가치의 차별화 원인은 기본적으로 통화정책 차이지만 경제 펀더멘탈 고려 시 100엔 환율 860원대는 다소 과도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달러가 최근에 조금 약해진 것은 연준의 금리인상 종료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라며 “하지만 유럽은 사실상 경기침체, 중국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 준하는 등 미국 외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달러 약세가 안착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박 연구원은 “현 시점에서 달러가 추가로 약세로 가기 위해서는 금리인하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연준 인사들은 여전히 금리인하 논의가 시기상조라며 오히려 추가적인 인상 여지를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부분을 프라이싱할만한 단계는 아직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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