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통화 달러화를 공약한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실제 달러를 공식 통화로 채택할지 주목된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밀레이는 인플레이션 근절을 위해 주요 선거 공약으로 통화를 페소화에서 달러로 전환하고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 권한을 박탈할 것을 내걸었다.
선거 운동 기간 “페소화는 배설물로서 가치도 없다”며, 페소를 저축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당선 소감에서도 “중앙은행을 폐쇄하는 건 도덕적 의무”라며 공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달러화 공약 배경은 아르헨티나가 수십년 만에 최악의 경제 상황에 직면한 데 있다.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은 143%에 육박하고, 빈곤율은 40%를 넘어섰다. 암시장에서 페소화는 미국 달러 대비 가치가 90% 하락했다.
이러한 가운데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마음대로 화폐를 찍어낼 수 없는 달러를 채택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달러화를 달성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우선 현 집권당인 페론주의 정치 세력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밀레이의 ‘자유의 전진’ 당은 상원 10%, 하원 15%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보수 및 중도 세력과 연합을 구성해야 하지만, 이들이 달러화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법원도 도전 과제다. 호사리오 로사티 대법관은 지난 9월 스페인 신문 엘파이스와 인터뷰에서 페소를 외화로 대체하는 건 위헌이며, 국가 주권 침해 행위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규모도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중남미 국가 중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가 통화로 달러를 도입한 바 있지만, 경제 규모 면에서 아르헨티나보다 현저히 작다.
아르헨티나가 경제난으로 파산 상태인 만큼 달러화를 실행할 자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달러화를 위해 300억달러가량을 차입해야 하는데, 사실상 자본 시장과 단절된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 서반구 국장을 역임한 경제학자 알레한드로 베르너는 “전체 통화 기반을 달러로 전환하려면 자본 시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아르헨티나에 그럴 여력은 없다”고 분석했다.
경제학자들은 달러화로 경제를 바로 세울 수 있을지에도 의문을 표한다. 앞서 달러화를 채택한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가 달러화 이후 자연스럽게 공공 재정을 바로잡은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에콰도르가 달러화를 도입하기 전 1990년대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아우구스토 델라 토레도 “달러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며 “구조 개혁을 대신할 순 없다”고 지적했었다.
달러화는 세계 경제에 잘 통합된 국가에선 효과적이지만, 주요20개국(G20) 중 가장 폐쇄적인 경제를 가진 아르헨티나엔 잠재적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아르헨티나의 원자재 기반 수출 구조는 미국과 다른 비즈니스 주기를 갖고 있고, 결국 미국 통화 정책 결정이 아르헨티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워싱턴 소재 국제금융협회의 라틴아메리카 연구 책임자 마르틴 카스텔라노는 “급격한 수출 가격 하락, 농산물 가격 변동성, 유가 상승, 전쟁이 수출 수요에 미치는 영향, 예금 인출로 이어지는 정치적 불안정과 같은 충격을 흡수할 유연성이 아르헨티나엔 없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의 경제학자들도 전날 보고서에서 “경제학에서 모든 게 그렇듯 공짜 점심은 없다”며 “달러화를 채택하고 보존하며 이득을 얻는 건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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