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를 만든 창펑자오(CZ)가 CEO에서 물러났습니다. 미국 사법당국은 자금 세탁 방지, 무면허 자금 전송 사업 운영, 미국 제재 위반 등 세 가지 혐의로 CZ와 바이낸스를 기소했습니다.
CZ는 21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애틀 연방법원에 출석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CZ는 막대한 벌금 외에도 최소 18개월 징역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사법당국은 그에 대한 형량 부과를 6개월 연기했습니다.
CZ는 어떤 인물일까요? 지난 4월 1일 게재한 바이낸스 CEO 창펑자오, 그의 인생을 바꾼 다섯 장면 기사를 다시 전송합니다.
[블록미디어 스탠리 최 기자]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지난 3월 27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와 CEO 창펑자오를 파생상품 등과 관련한 규제 위반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바이낸스(Binance)는 2017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돼 현재는 싱가포르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2019년 샌프란시스코 소재 사무소도 세웠다. 바이낸스 측은 본사가 따로 없다고 밝히고 있다.
바이낸스는 창펑자오와 그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허이(何一)가 함께 설립했다. 바이낸스 제국을 일궈낸 창펑자오는 어떤 인물일까? 블록미디어가 그의 운명을 바꾼 5 가지 사건을 재조명했다.
# 장면 1 : 창펑자오, 비트코인을 만나다
창펑자오는 1977년 중국 장수(江苏)성 롄윈강(连云港)에서 교사가 직업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창펑자오는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고 맥길(McGill)대학 컴퓨터공학를 졸업했다. 그는 이후 국적을 캐나다로 바꿨다.
졸업 후 창펑자오는 핀테크 기업에 입사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었다. 하지만 2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블룸버그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고 뉴저지, 런던, 도쿄 지사에서 팀장을 역임했다. 이는 적어도 창펑자오의 비즈니스 능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중국 매체 소후닷컴은 이때의 창펑자오에 대해 “블룸버그에서 일하던 중 창펑자오는 다국적의 비즈니스를 경험했다. 그때 그는 국경 간 지불 수수료가 지나치게 비싸고 프로세스도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것이 이후 비트코인을 만나는 길을 열었다”고 언급했다.
실제 창펑자오는 2013년 벤처캐피털리스트로부터 비트코인에 대해 알게 됐다. 비트코인 특유의 암호성, 편의성, 유동성 등의 특징은 창펑자오를 매우 흥미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블록체인인포(Blockchain.info)’의 세번째 창립 멤버로 합류한다.
# 장면 2 : OK코인 공동창업자로
2014년 비트코인의 매력에 빠진 창펑자오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의 집을 팔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달랑 남긴 것은 휴대폰 하나였다.
그러나 1년이 채 되지 않아 상하이 집값은 두 배로 뛰었지만 비트코인은 폭락했다. 막대한 금전적 손실 앞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OK코인(OKCoin)의 설립자 쉬밍싱(徐明星)을 만나 OK코인의 공동창업자이자 CTO로 합류해 글로벌 업무를 총괄한다.
소후차이나에 따르면,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자라온 배경도, 가치관도 다른 두 사람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창펑자오는 겨우 1년 만에 OK코인을 떠난다.
창펑자오가 자신의 거래소를 만들고 싶다는 꿈은 2017년에 이루어진다. 2017년 6월 창펑자오는 공식적으로 바이낸스를 설립했고 같은 해 7월 총 발행량 2억 개, 유통량 1억 개에 달하는 자체 토큰인 바이낸스 코인(BNB)을 출시해 ICO로 1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업을 전개할 든든한 밑천이 마련된 것이다.
때를 잘 만난 것일까? 이때부터 암호화폐가 최고의 시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자료를 보면 2017년 8월 바이낸스의 사용자 수는 전세계 180여개국에 걸쳐 1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온다. 절대적으로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매일 사용자가 4000~6000명씩 증가했고 2018년 1월에는 반년만에 바이낸스 등록 사용자 수가 600만명을 돌파했다. 그 중 97%가 외국인 사용자였다. 바이낸스는 6개월 만에 2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다고 발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바이낸스 사용자는 2022년 7월 1억 2000만명을 돌파했고 3600억 달러 가치의 회사가 됐다. 창펑자오는 바이낸스 지분 30%를 보유중이다.
# 장면 3 : 승부사…세콰이어 캐피탈과 벌였던 일전
거물급으로 올라선 창펑자오는 2018년 세계적인 투자업체인 세콰이어 캐피털을 저격했다. 2018년 5월 7일 그는 “ICO는 유익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라는 트윗으로 세콰이어를 향한 포문을 열었다.
창펑자오는 트윗을 통해 전통 벤처캐피탈(VC)들의 단점을 열거하면서 이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 부족, 투자 조건에 대한 고압적 태도, 긴 투자 기간 및 번거로운 절차 등을 일일이 성토했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 VC가 바로 세콰이어였다. 이어진 트윗에서 창펑자오는 직접 “우리는 바이낸스에 상장을 신청하는 모든 프로젝트에게 세콰이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지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나오자마자 실제 세콰이어와 관련된 여러 프로젝트 토큰 가격이 급락했는데, 그 중 세콰이어가 투자한 IOST는 7.17% 하락하기도 했다.
당시 바이낸스와 세콰이어는 법적 분쟁 중이었다. 이 분쟁은 2017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측은 A라운드 투자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세콰이어는 한달 전 설립된 바이낸스를 8000만 달러의 가치로 평가했다.
양측은 투자의향서를 체결했고 9월 1일 A라운드에서 세콰이어는 6000만 위안(880만 달러)를 투자해 바이낸스 지분 11%를 받기로 하는데 서명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계약에는 6개월의 관찰기관과 배타적 투자에 대한 독소 조항이 있었다. 즉 2018년 3월 1일까지 바이낸스는 다른 VC와 소통하거나 투자, 거래를 하면 안됐다. 그 댓가로 세콰이어는 바이낸스 일본 지사에게 약 3000만 위안(한화 57억원)의 브릿지론을 제공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물론 양사가 합의한 조건이었다.
세콰이어로서는 관찰 기간을 일종의 보험 기간으로 뒀던 셈이다. 이 기간동안 바이낸스가 확실한 성장을 못보여주면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었다. 이 점에서 이 계약은 세콰이어가 모든 주도권을 쥔 게임이었다.
다행히도 바이낸스는 투자 계약 이후 급성장했다. 당시 비트코인은 슈퍼사이클에 진입했고 바이낸스는 OKeX를 제치고 한때 거래량 1위 거래소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적이 좋아진 바이낸스는 세콰이어가 제안한 880만 달러가 불만족스러웠을 테고, 결국 잡음이 일기 시작한다.
결국 바이낸스는 세콰이어와 재협상한 지 이틀 만에 IDG와 지분 인수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IDG는 B1라운드 평가 가치 4억 달러, B2 라운드 평가액 10억달러를 제시했다. 몇 달 사이 바이낸스의 몸값이 달라진 것이다.
바이낸스의 이런 행동은 세콰이어를 열받게 했고 세콰이어는 홍콩 법원에 바이낸스가 자신들과의 협상 기간내에 다른 투자자와 협의하는 짓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세콰이어의 바램대로 홍콩 법원이 세콰이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결정에 화가 난 창펑자오는 트윗을 통해 설전을 벌였다. 바이낸스 공동 창업자 허이가 창펑자오를 거들었다.
바이낸스의 경쟁사였던 후오비(Huobi) 창업자 리린(李林)은 오히려 “세쿼이아 캐피탈의 프로젝트가 거래소에 상장되면 심사때 가산점을 줄 거야”라며 창펑자오의 약을 올렸다.
# 장면 4 : 바이낸스와 루나(Luna),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바이낸스는 2018년 300만 달러에 1500만 개의 루나 토큰을 구입했다. 개당 구입가는 5달러였다. 루나가 최고가였던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바이낸스가 구입한 루나 토큰은 13억 달러에 달했고 장부상 이익은 450배나 뛰어 있었다.
하지만 2022년 5월초 루나와 테라가 붕괴하면서 루나 토큰은 불과 며칠만에 개당 90달러에서 거의 ‘제로(0)’로 하락했고 바이낸스의 돈도 모두 사라졌다. 물론 이것은 바이낸스가 루나를 하나도 팔지 않고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하는 얘기다.
작년 12월 FTX의 FTT가 붕괴됐을 때 바이낸스 공동창업자 허이는 보유중인 FTT를 팔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이는 “루나 사태 당시에도 코인을 팔지 않았는데 이미 바닥인 FTT를 팔아서 뭐하냐”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루나 토큰을 1500만개나 보유하고 있었으면서 무려 2년 동안 타임캡슐처럼 단 한 개도 팔지 않고 묻어뒀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2022년 5월 17일, 창펑자오는 바이낸스의 루나 투자에 대해 “다시 가난(Poor again)!”이라고 썼다.
# 장면 5 : 바이낸스와 FTX, 창펑자오 “SBF에게서 내 그림자가 보인다”
FTX를 바하마에 설립된 기업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애초에 설립된 곳은 홍콩이다. 2019년 설립된 뒤 3년간 발전을 거듭한 끝에 FTX는 320억 달러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됐다. FTX의 자회사 FTX.US는 2022년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가치있는 민간 핀테크 기업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창펑자오가 FTX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BF)는 친했을까? 정답은 ‘말해 뭐해’다. 창펑자오는 일찍이 “SBF에게서 내 그림자가 보인다”며 ‘날 닮은 너’로 SBF에게 찬사를 보낸 적도 있다.
FTX에 투자한 바이낸스는 내부적으로 파생상품 거래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파생상품 거래가 주를 이뤘던 FTX의 비즈니스 모델과 고도로 겹치는 상황을 유발했고 결국 갈등을 예고했다.
2022년 11월 FTX가 급격히 무너질 때 창펑자오는 잠시나마 백기사가 될 의향을 비쳤다. 하지만 그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FTX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창펑자오는 당시 FTX에 정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FTX를 인수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정말 암호화폐 세계의 정의를 위한 것이었는지 경쟁자를 제거하고 싶어서 그랬는지는 알 길이 없다. FTX는 결국 파산했다. 수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창펑자오는 이 사태에 책임이 없을까?
2023년 3월 23일 소후차이나는 ‘암호화폐 업계의 풍운아 창펑자오의 글로벌 유랑생활’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과거 중국의 암호화폐 핵인싸였던 리샤오라이(李笑来)가 창펑자오를 평가한 녹취록이 나온다.
리샤오라이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창펑자오는 단지 특정한 시기에 거래소라는 기회를 잡았고, 적당한 시기에 (캐나다로) 국적을 바꾸고 중국시장을 떠났다.”
리샤오라이의 말을 인용하면 창펑자오는 바람잘날 없던 암호화폐 업계에서 단지 하나의 기회를 붙잡은 것 뿐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기회를 잡기 위한 전제는 실력을 갖추는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행운도 평범함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창펑자오가 수 조 달러의 거부가 된 것을 행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방법이 CFTC를 비롯한 규제기관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문제라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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