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James Jung 기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개리 겐슬러(Gary Gensler) 위원장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포춘은 지난 11월 28일 겐슬러가 어떻게 워싱턴 정가에서 현재 위치까지 올라왔는지 심층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겐슬러는 신입니다. 그것도 보복의 신(Nemesis)입니다.”
암호화폐 업계는 지금 비트코인 ETF로 약간 들떠있는데요. 블랙록 등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이 SEC를 설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 충돌, 또 충돌
겐슬러는 SEC 위원장 5년 임기의 절반 정도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는 월가와 투자자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민간 부문과 의회에서 겐슬러는 저항과 반대, 환멸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겐슬러는 취임 30 개월 동안 두 전임 위원장들보다 각각 62%, 91% 더 많은 규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암호화폐 관련 업체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남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 금융사, 자산운용사, 헤지펀드에 대해서도 강경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포춘은 겐슬러가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SEC 내부 평가는 어떨까요? 최근 SEC를 떠난 한 직원은 조직 내의 갈등을 묘사하면서 “압박감과 좌절감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사와 같은 겐슬러가 어떻게 금융 정책 공무원이 될 수 있었을까요?
# 골드만삭스 파트너에서 CFTC 위원장으로
2008년 말 금융 위기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시장 붕괴를 초래한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수장이 그 일을 해야했죠. 겐슬러가 추천을 받았습니다.
겐슬러는 21세에 와튼 스쿨 MBA를 받고 1979년 곧바로 골드만삭스에 들어갑니다. 그는 골드만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파트너로 승진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겐슬러는 ‘규제 완화 시대’였던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습니다. 월가 출신이면서 규제 완화를 주도한 경력 때문에 민주당 내 진보주의자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겐슬러 CFTC 위원장 인준 안을 거의 5개월 동안 묵살하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겐슬러는 좌파 시민운동단체(Public Citizen)를 찾아가 타이슨 슬로컴이라는 인물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겐슬러는그와 2 시간 넘게 토론을 했는데요. 슬로컴은 겐슬러를 지지하기로 생각을 바꿉니다. 다른 진보 진영 인사들이 이유를 묻자, 슬로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시간을 내어 겐슬러를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없군요.”
CFTC 위원장으로 인준을 받은 겐슬러는 그 유명한 ‘도드-프랭크 법’ 제정에 기여합니다. 월가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죠. 겐슬러는 그의 고향, 동료, 선후배들이 있는 월가를 상대로 5년 동안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겐슬러 밑에서 일했던 CFTC의 한 직원은 “그는 신이었다”고 포춘과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보복의 신, 네메시스.
# 인생을 바꾼 사건
겐슬러와 가까운 몇몇 사람들은 2006년 아내가 죽은 이후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겐슬러는 혼자서 세 딸을 키웠습니다. 그는 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겐슬러의 고향은 볼티모어입니다. 그는 쌍둥이입니다. 부모님과 달리 두 형제는 대학을 나왔습니다. 스무살의 겐슬러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바넷 네일러는 “겐슬러는 에너자이저 버니(Bunny)다”라고 말했습니다. 건전지 광고에 나오는 ‘작은 토끼’는 절대 지치지 않죠.
겐슬러는 CFTC 직원들에게 월가의 사이클에 맞춰 일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금융맨처럼 미친 듯이 일하라는 것이죠. 직업 관료들에게는 상상도 못한 업무 강도입니다.
겐슬러는 아내가 몰던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골드만 파트너 출신인데도 말이죠. 마침내 이 차가 더 이상 굴러가지 않자 새 차를 뽑았습니다. CFTC 직원들에게는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핸드프리 블루투스를 쓸 수 있게 된 겐슬러는 차 안에서 전화로 쉴 새 없이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렸습니다.
한 직원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전화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전화기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팔이 피곤해질 정도였어요.”
# 워렌 의원에게 속삭일 수 있는 사람
겐슬러는 CFTC를 떠난 직후 힐러리 클린턴의 2016년 대선 캠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합류합니다. 당시 민주당 강경파 의원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과 인연이 알려집니다.
클린턴 캠프의 한 고위직으로부터 겐슬러는 “엘리자베스와 속삭이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워렌 의원은 오클라호마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하버드 법학 교수에 오른 인물입니다. 급진적인 진보주의자이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포퓰리즘적 비판으로 유명합니다. 워렌과 겐슬러는 둘 다 도드-프랭크 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습니다.
4년 후 워렌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했지만 규제를 둘러싼 싸움에서는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이든 후보가 월가와 은행에 대해 워렌의 전투적인 공약을 채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부 소식통은 겐슬러와 워렌이 바이든 행정부의 금융 규제 접근 방식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겐슬러를 SEC 위원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워렌 의원은 반 암호화폐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겐슬러와 생각이 같습니다. 워싱턴 정가에는 겐슬러가 재무장관이 되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 반 암호화폐 정책
클린턴 대선 캠프를 나온 이후 2018년 겐슬러는 MIT에서 강의 교수로 초대되었습니다. 그는 블록체인에 대해 누구도 강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겐슬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와 비트코인 미니멀리스트의 중간으로 가르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가 SEC 위원장으로 지명됐을 때, 많은 암호화폐 관계자들이 이 강의를 오해했습니다. 암호화폐를 잘 아는 인물이 왔다고. 겐슬러는 위원장이 되자마자 암호화폐 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겐슬러는 전사와 같은 기질을 가진 인물입니다.
# 안팎의 반발
워싱턴 정가와 관가에서 겐슬러만큼 자기 주장이 뚜렷한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겐슬러는 똑똑합니다. 추진력도 있습니다. 워렌 의원 등 민주당 강경파와도 친합니다.
친 암호화폐 성향의 민주당 및 공화당 의원들이나, 지나친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보수층에서는 겐슬러를 싫어합니다. 미국 대법원은 100년래 가장 보수적인 법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내부 반발도 문제입니다. 겐슬러가 위원장이 된 후 SEC 이직률이 4%에서 6.3%로 올라갔습니다. 올해는 4.7%로 다시 떨어졌지만, 민간 기업으로 이탈하는 직원들이 많습니다.
암호화폐 산업을 지지하고 SEC 위원장을 노골적으로 비판해온 민주당 하원의원 리치 토레스(Ritchie Torres)는 “겐슬러는 규제 기관으로 가장한 정치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블랙록 등 월가의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겐슬러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암호화폐의 금융상품화, ETF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내공과 전략을 갖추지 않고서는 반 암호화폐 선봉장 겐슬러를 승복시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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