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 박영주 임하은 기자] 정부가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교역이 회복되면서 수출은 증가하지만, 건설경기가 악화하고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서 경기 회복세가 더딜 거라는 판단이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2.6%로 지난해보다 둔화하지만, 여전히 물가안정 목표(2.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상반기까지 3% 내외 수준의 고물가 흐름이 지속되다가 하반기로 갈수록 서서히 안정될 거라는 시나리오다. 지정학적 갈등, 기상 여건 등 물가 상승을 부추길 불확실성도 상존했다.
정부는 4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성장률 2.4→2.2% 하향…한국은행보다 낙관적
정부는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2% 성장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 7월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발표한 전망치 2.4%보다는 0.2%포인트(p) 눈높이를 낮췄다.
이번 전망은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치와 같다. 반면 한국은행(2.1%), 한국금융연구원(2.1%), 산업연구원(2.0%)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LG경영연구원(1.8%), 신한투자증권(1.7%) 등은 이보다 저조한 1%대 성장률을 제시했다.
세계 교역과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면서 수출을 중심으로 우리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지만,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영향으로 민간 소비 개선이 제약되고 건설투자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 봤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수출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예상하는 궤도 내에서 회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소비는 작년 3분기, 4분기를 고려할 때 (올해도) 회복하는 힘이 약해질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설투자의 경우 작년까지는 사회간접자본(SOC)과 주택 등이 받쳐주면서 흐름이 생각보다 좋았는데, 올해는 건설 경기 부담이 커지면서 마이너스(-)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건설투자 1.2% 감소…고물가·고금리에 민간 소비 위축
올해 경제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건설경기 부진과 민간 소비 위축이 꼽힌다. 특히 건설투자는 1.2%나 쪼그라들 것으로 봤다.
실제 건설 수주는 2022년 4분기 전년 동기 대비 17.4%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 1분기(-11.1%), 2분기(-31.5%), 3분기(-44.7%)로 부진이 이어졌다. 올해도 부동산 경기 하강, 건설 수주와 착공 부진 등으로 건설 경기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건설업계의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간 가운데 고물가에 따른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업계 전반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환 차관은 “전반적으로 봤을 때 건설경기가 안 좋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면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2012년 대책 수준일지, 조금 덜 할지 등은 진단하고 협의해서 적절한 시기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민간 소비도 1.8% 증가에 그칠 것으로 봤다.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질소득이 감소해 서민들이 지갑을 닫을 거라는 추측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매판매액 지수(불변지수)는 지난해 7월(-1.7%)부터 5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설비투자는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비투자에서 정보기술(IT),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반도체 경기 회복, 수출 호황과 맞물려 올해 설비투자도 지난해보다 좋아질 거라는 전망이다. 지식재산생산물투자 역시 2.7% 증가가 관측된다.
◆상반기 3% 내외 고물가 지속…반도체 호황에 수출 8.5%↑
내년 소비자물가는 2.6% 상승할 것으로 점쳤다. 지난해 7월 전망치 2.3%보다 0.3%p 높은 수치다. 국제 원자재가격 안정세와 함께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3.6%)보다 상승률이 둔화하지만, 올해 상반기까지는 3% 내외 수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0%)도 여전히 웃돌 거라는 전망이다.
이는 올해 원유 도입단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81달러를 기록할 거라는 계산을 전제로 했다. 다만 미국 대선 등 주요국 정치 이벤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 엘리뇨(해수 온난화 현상) 등 불확실성도 물가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남아 있다.
윤인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올해 물가상승률은 2.6%를 전망하지만 상반기까지는 3% 내외의 상승률을 보이다가 하반기가 돼야 2% 중반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수 부진과 높은 물가가 겹치면서 상반기까지는 민생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출은 8.5% 증가할 거라고 제시했다. 세계 교역이 회복되고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면서 지난해(-7.4%) 부진을 딛고 반등할 거라는 시나리오다. 내년 수입은 4.0% 증가가 예상된다.
경상수지는 전년(310억 달러)보다 흑자폭이 대폭 확대된 500억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출 회복 등으로 상품수지가 550억 달러 흑자가 예상되지만 서비스수지의 경우 해외여행 증가로 5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취업자 수는 23만명이 늘면서 지난해(32만명) 증가폭보다 다소 축소될 전망이다. 다만 고용률은 인구 증가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작년(62.6%)보다 상승한 62.8%로 예측된다.
김 차관은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부문 간 회복 속도의 차이 등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 회복세가 내수로 이어져서 국민들이 모두 체감하는 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내수 불확실성 커…저성장 기조 고착화 우려”
전문가들은 올해 내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 부동산에 의존한 내수 등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경기는 회복되겠지만, 경기 회복세가 내수나 소비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고물가·고금리 영향이 계속되면서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가계부채도 소비를 제약하면서 내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의존도가 큰 수출, 부동산에 의존한 내수와 가계부채 증가 등 우리 경제 기존의 성장 방식이 한계에 도달한 데다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은 개선되고 내수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거라는 전망은 잘해놓고 막상 내수를 어떻게 살릴지에 대한 대책이 안 보인다”며 “이번 경제정책방향도 민생경제를 가장 앞서 내세워놓고 실제 민생경제 악화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금리 영향으로 내수와 소비가 침체한 상황에서 수출이 회복되지만, 이것만으로 성장률 2.2%는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 성장률이 (정부 제시대로) 낙관적이면 잠재성장률 수준, 비관적이면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만큼 경기 둔화 또는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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