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태영 측의 알맹이 빠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자구안에 채권단의 반응은 냉랭하다. 관심을 모았던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이나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 매각이 빠진데 다 외상매출 채권 미상환으로 신뢰가 깨지면서 태영건설 정상화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이다.
주 채권자인 산업은행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비난했고, 금융당국도 “오너 일가를 위한 자구안”이라고 질책하며 주말까지 추가 자구안을 내놓으라고 압박에 나섰다. 산은은 1차 채권단협의회가 열리기 전 채권자회의를 소집해 채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로 했다.
◆’SBS 매각’·’사재 출연’도 없었다…태영의 ‘맹탕 자구안’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태영그룹은 지난 3일 열린 태영건설 워크아웃 관련 채권단설명회에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1549억원)의 태영건설 지원 ▲에코비트 매각추진 및 매각대금의 태영건설 지원 ▲블루원의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62.5%) 담보제공 등 4가지 자구안을 내놨다.
채권단의 평가는 싸늘하다. 관심 대상이었던 SBS 매각과 윤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영건설은 채권단에 “(SBS지분 매각은) 방송사라 법적 제약 있다”고 해명했고, TY홀딩스 지분 매각과 담보 제공에 대해서는 “지분 담보권이 실행되면 경영권이 완전히 달라져 책임일 이유가 없어진다”고 난색을 보였다.
설명회 전 내놓은 자구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태영은 지난달 28일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해 2400억원을 확보했다. 채권단은 이 금액이 협력업체 상거래채권 결제에 쓰일 것으로 봤지만, 태영 측은 외상매출 담보 채권대출 451억원을 갚지 않았았다. TY홀딩스가 태영건설에 1133억원을 빌려주기로 한 약속도 현재 400억원만 투입된 상태다.
◆ 채권단·금융당국의 압박 “추가 자구안 내놔라”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강도 높은 비난으로 주말까지 추가 자구안을 내놓으라며 압박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11일까지 태영에 좀 더 전향적이고 과감한 추가 자구 계획을 제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석훈 회장은 설명회 직후 간담회를 자청해 “태영 측이 당초 약속한 자구 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주채권은행으로서 대단히 유감”이라면서 “상식적으로 이런 제안으로 채권단에서 75%가 동의한다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 분위기도 냉랭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태영건설이 아닌 오너 일가를 위한 자구 계획”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하며 “시한이 1월11일인데 이런 방안에 (채권단이) 무조건 동의해라 할 수는 없다”고 일갈했다. 이어 “최소한 주채권 은행인 산은이 수긍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고, 협의돼야 한다”면서 “산은도 채권단을 설득해야 하니까 (추가 자구안 제시가) 이번 주말을 넘으면 안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4년 경제정책방향 범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태영그룹이 국민 기대에 부합한 수준의 자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킬 만한 수준의 추가 자구안을 내놔야 한다고 압박했다.
◆ 산은 ‘채권자회의’ 소집…워크아웃 향방 판가름
산은은 이달 11일 열리는 1차 채권단 협의회 전 채권자회의를 따로 소집해 태영 측의 자구안에 대한 채권자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회의에서는 SBS 지분 매각과 오너의 사재 출연 등이 빠진 자구안에 대한 질책과 함께 해당 내용을 반영한 추가 자구책 요구가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 관계자는 “1월11일 워크아웃 결정 전에 채권자회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워크아웃은 채권단의 75% 동의를 얻어야 진행된다. 워크아웃에는 채권사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반대하는 채권자는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해 워크아웃에서 이탈할 수 있다. 이 경우 워크아웃 찬성 채권자는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채권자에 대해 청산가치에 준하는 채권액을 물어줘야 한다. 워크아웃에 도달하지 못하면 태영건설은 법정관리나 청산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금융권에서는 일부 선순위 금융사의 경우 담보가 확실한 만큼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본다. 반면 정부가 태영 위기를 금융리스크 확산으로 막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금융사로서 반대매수권 청구는 쉽지 않다는 예상도 있다. 채권자회의 개최는 태영 측에 추가 자구책을 압박하며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지을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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