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수조원대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주요 판매사들을 대상으로 이번주부터 현장검사에 나섬에 따라 불완전판매 여부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사전점검에서 12개 주요 판매사들의 관리체계상 미비점을 다수 확인한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위법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고강도 제재도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 등 7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H지수 ELS 판매실태와 관련한 현장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오는 8일 홍콩 ELS 최대 판매사인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이달 중 나머지 10개 판매사에 대해서도 현장검사를 진행한다.
◆상반기 홍콩 ELS 폭탄 터진다…수조원대 손실 예상
ELS는 특정 주가지수에 연동된 증권으로 만기까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약속된 수익률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통상 코스피200, S&P500, 홍콩 H지수 등 국가별 대표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일정 비율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률이 보장되는 구조다.
그러나 홍콩 H지수가 2021년 상반기 고점 대비 반토막나면서 올해 상반기 만기 도래 상품부터 대규모 원금 손실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기업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한 홍콩 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만2229포인트에서 2022년 10월 4939포인트로 59.6%나 급락했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5769포인트로 소폭 반등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최근 고점 대비 반토막에도 못 미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5일 기준 금융권의 홍콩 H지수 ELS 총 판매잔액은 은행 15조9000억원(24만8000계좌), 증권 3조4000억원(15만5000계좌) 등 총 19조3000억원이다.
2021년 판매 상품의 조기상환 실패 등 영향으로 전체 잔액의 79.6%인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안에 도래한다. 분기별로는 올해 1분기 3조9000억원(20.4%), 2분기 6조3000억원(32.3%) 등 상반기에만 52.7%(10조2000억원)의 만기가 집중돼 있다.
금융권에서는 홍콩 H지수 관련 ELS 중 40% 가량이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어 상반기 4조원 규모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홍콩 ELS 총 판매잔액 가운데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91.4%(17조7000억원)에 달해 개미들의 곡소리가 우려된다.
◆고령층 판매비율 30% 넘어…불완전판매 여부가 쟁점
금감원의 이번 현장검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뤄진다. 하나는 지난해 11~12월 주요 판매사들을 대상으로 한 점검에서 발견한 전반적인 판매 관리체계상 문제들을 보다 정밀하게 점검해 확정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12개 판매사들에 대한 현장·서면점검에서 ▲ELS 판매한도 관리 미흡 ▲핵심성과지표(KPI)상 고위험·고난도 ELS 상품판매 드라이브 정책 ▲계약서류 미보관 등의 문제점을 확인한 바 있다.
또 하나가 홍콩 ELS 사태의 핵심 쟁점인 불완전판매 여부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브리핑에서 “지난해 11~12월 한 것은 본점에서 이 상품을 어떻게 판매하게 됐고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본 점검이었다”며 “불완전판매나 위법 사항에 대해서는 8일부터 현장검사를 가서 세밀하게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완전판매란 판매자가 수익과 손실 관련 내용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일컫는다.
홍콩 ELS로 이자는커녕 원금까지 날릴 위기에 처한 투자자들은 은행으로부터 이토록 위험한 투자라는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한 채 거액을 투자해 큰 손실을 보게 생겼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홍콩 H지수 ELS 판매사들은 “상품과 관련한 충분한 설명을 했고 가입자가 이를 확인하는 녹음도 있다”며 불완전판매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9년 DLF 사태와 2020년 사모펀드 사태 등을 거치며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라 판매 과정에서 녹취를 강화하고 AI를 통해 상품에 대한 필수 설명 등을 이행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 등 판매사의 상품 설명이 요식행위에 그쳤을 뿐 소비자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했다면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상품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고령층에 대한 ELS 판매는 불완전판매 소지를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65세 이상 고령투자자가 금융권 홍콩 H지수 ELS 판매잔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5%(5조4000억원), 계좌수 기준으로는 21.6%(8만6000계좌)에 달한다.
금감원은 이번 현장검사를 통해 H지수 ELS 판매와 관련한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나 위법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중히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관련법의 형식적 요건 준수 뿐만 아니라 판매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 4일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에서 “자기책임 하에 투자해야 하는 게 기본 원칙이지만 과거 DLF나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를 겪은 판매사들이 여전히 면피성으로만,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에 소홀했다면 책임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판매사의 불완전판매가 밝혀진다면 가입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을 길이 열린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경우 판매사에 최대 80%의 배상 책임을 물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ELS 관련 민원을 유형별로 분류해 배상기준을 마련하고 인력도 대폭 늘리는 등 대규모 분쟁조정 준비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박 부원장보는 “신속하게 현장검사를 실시하는 이유도 소비자 피해가 이제 계속 발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가능하면 신속하게 불완전판매나 판매 행위 과정에서의 불법 등에 대해 빨리 정리를 해서 배상 기준을 최대한 신속하게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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