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홍 기자] 정부와 채권단이 태영건설 대주주에 전방위적으로 압박했음에도 여전히 태영 측은 추가 자구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주말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작업)의 분수령인 만큼 태영건설의 법정관리(회생절차) 가능성은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채권금융사들은 태영이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하더라도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기업융자 등 금융거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도 태영건설을 직접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태영은 7일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제시한 추가 자구안을 여전히 내놓지 않고 있다. 채권단은 기존 자구안이 미흡하다며 추가 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태영은 사실상 워크아웃 분수령인 오늘까지 묵묵부답인 상태다.
◆묵묵부답 태영…정부·채권단 압박 수위 높여
지난 3일 태영은 산업은행 본사에서 열린 채권단 설명회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돌입하기 위한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자구안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1549억원) ▲에코비트 매각 ▲블루원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 등 총 4가지다.
태영의 자구안 이행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당초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을 1549억원이 아닌 2062억원을 요구했었다. 윤석민 태영그룹회장(416억원), 여동생 윤재연 블루원 대표(513억원), 티와이홀딩스(1133억원)가 각각 자금을 마련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나 태영 측은 윤재연 대표를 이번 경영 책임과 상관이 없다며 배제했고, 결국 513억원이 빠진 1549억원으로 지원금액이 축소됐다.
축소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1549억원)도 태영건설에 온전히 쓰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549억원 중 659억원만 태영건설의 직접적인 자금에 지원됐고, 나머지 890억원은 티와이홀딩스과 태영건설의 연대보증채무를 해소하는 데 사용됐다.
이를 두고 태영 측은 “태영건설을 대신해 티와이홀딩스가 개인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직접 상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채권단은 태영건설을 위한 지원이 아닌 티와이홀딩스 즉, 사실상 오너 일가를 위한 지원이라고 일축했다. 산업은행은 “연대보증채무 상환으로 티와이홀딩스 리스크를 경감하는 것은 티와이홀딩스 이익일 뿐 태영건설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윤석민 태영 회장이 대여하기로 한 416억원도 연대보증채무 890억원에 포함된 상태다. 결국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1549억원 중 태영건설에 직접 투입된 금액은 659억원뿐이다. 태영 측은 이미 890억원을 연대보증채무 해소에 쓴 만큼, 다시 태영건설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정부와 채권단은 티와이홀딩스의 연대보증채무에 쓰인 890억원을 다시 태영건설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너 일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태영건설을 살리는데 자금을 정확하게 쓰라는 지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태영건설 지원에 전혀 쓰이지 않고 총수 재산 핵심인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지키는 데 쓰인 게 현실”이라며 “그나마 태영건설 지원에 쓴 것도 회사(티와이홀딩스) 자금만 쓰고 대주주 일가가 가진 개인명의 자금은 아예 따로 파킹된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7일 뉴시스에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대주주의 자구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태영건설이 자구 노력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정부의 지원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오전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경영자가 자기의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법정관리 돌입하나…채권단 “신뢰 상실, 거래관계 재검토”
태영이 추가 자구안을 여전히 내놓지 않고 있어, 태영건설의 법정관리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태영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동의 여부는 오는 11일까지인데, 이 상태로라면 채권단이 거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채권단이 워크아웃에 반대하고 태영건설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까지 모든 채권이 동결되면서 분양 계약자와 500여개 협력업체의 피해가 커지게 되고 나아가 국내 경제의 뇌관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법정관리를 통해 금융사들은 선순위, 후순위에 따라 채권을 본격적으로 회수하게 된다. 이어 법원이 회생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하면 최악의 경우 태영건설은 청산될 수 있다.
법정관리 돌입하면 사회적 파장이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한진해운 파산 사태처럼 청산되더라도 채권단 중심으로 협력업체에 보증을 서거나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해 태영이 워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재출연 등 추가 자구계획을 내놓기보다는, 오히려 티와이홀딩스의 연대보증채무 해소, 자본확충 등으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태영그룹(오너 일가)이 법정관리에 돌입해 회생하더라도 기존과 같은 금융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구계획 이행안을 성실하게 내놓지 않아 금융거래의 핵심인 신뢰를 상실했다는 이유에서다. 국책은행을 비롯한 5대 시중은행이 제공하고 있는 기업금융(융자 등)이 앞으로 더 이상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태영이 대출 상환 기한을 지키지 못했고, 상환 유예를 시켜줄 테니 자구안을 가져오라고 했는데도 이 역시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당연히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출 등 채무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고 거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제·금융·통화당국 간 최고위급 협의체인 ‘F4 회의’는 8일 오전에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정부는 워크아웃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전망이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태영건설의 법정관리 돌입을 대비해 컨티전시 플랜도 마련하고 있다. 오는 8일 산업은행 본사에서 부동산프로젝트 파이낸싱(PF) 파장과 관련해 점검회의를 개최한다.
현재 태영건설이 갚지 못한 PF 관련 채무는 10조원에 달한다. 태영건설이 금융사 80곳에서 조달한 직접 차입금은 1조3007억원이다. 규모가 작은 시행사의 대출에 대해 시공사인 태영건설이 보증을 선 규모는 9조1819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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