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증권사 일임형 랩어카운트 잔고가 7년 만에 100조원대가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채권형 랩·신탁 돌려막기 관행을 정조준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일임형 랩어카운트 잔액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93조9386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말(115조1181억원)과 비교하면 18.40%(21조1795억원) 급감한 수치다.
지난해 5월부터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월말 잔액은 직전달인 10월 말(95조2748억원) 100조원 아래로 내려갔다. 100조원 밑으로 떨어진 건 지난 2016년 10월 이후 7년 만이다.
같은 기간 채권형 특정금전신탁 잔액도 52조9769억원으로 2022년 말(64조2768억원) 대비 17.58%(11조2999억원)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투자자의 자산을 하나로 묶어(wrap) 알아서 운용해주는 자산종합관리계좌다. 주로 채권에 투자하며, 신탁상품과 함께 법인이 단기자금을 굴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 시장은 지난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로 수익률이 급감하는 등 영향을 받는 듯하다가 지난해 초 채권 금리가 내려가고 증시가 반등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랩·신탁 불건전 영업관행을 테마검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기획검사를 실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증권사들의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다고 검찰에 통보한 데다 증권사 임직원에 대한 대규모 제재가 예고된 상태다.
금감원은 특정 고객의 랩·신탁 계좌로 기업어음(CP) 등을 고가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증권사가 제3자에게 손실을 전가한 잘못이 있다고 보고 있다. 채권 금리가 급등한 시기에 만기가 먼저 도래한 고객들의 수익률을 보전해주고 손실을 만기가 좀 더 늦은 계좌로 돌린 것이다.
금감원이 파악한 증권사별 손실 전가 금액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른다. 이런 탓에 법인투자자들이 단기자금을 굴릴 때 랩·신탁 상품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여러 증권사에서 오랫동안 이뤄진 관행이었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최근 증권사들이 조직을 개편하면서 대폭 물갈이한 것도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위기 의식이 반영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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