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홍 이정필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정황에 대한 선제적 자율배상을 촉구한 가운데,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관심이 주목된다. 금감원은 금융사들이 불완전판매를 일부 인정했을 뿐더러 노후자금 등 소비자의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만큼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어도 금융사들이 선제적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을 하면 금융사들 입장에선 피해구제 노력을 인정받아 향후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 있으나, 주주·채권자 등 제3자로부터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도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2024년 금감원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은행·증권사를 향해 홍콩 ELS에 대한 자율배상을 촉구했다. 금융사 창구 직원들이 소비자 자산 규모·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등 불완전판매 소지가 여럿 있다는 점에서다. 또 분쟁조정 절차가 장기간 진행되면 노후자금을 당장 사용해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유동성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부분도 고려했다.
이 원장은 “소비자 전체 자산 구성과 규모를 고려해 적절하게 상품을 제공했는지, 거꾸로 금융회사 담당자들이 마치 내 일처럼 고민해서 상품을 권유했는지 의문”이라며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ELS를 포함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한정적으로 노후 자금 1억원밖에 없는 개인 투자자에게 ELS 포션을 상당히 넣었다면, 과연 금융사가 소비자 자산운용 목적에 맞게 상품을 판매한 것인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또 “불법과 합법을 떠나 금융권 자체적인 자율 배상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최소 50%로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불법이 아니면 금융사가 아무런 책임을 안 질 것이고 결국 소비자가 법원(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융사들도 (불완전판매 혐의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배상 규모가 일부 차이가 있더라도 금융사들이 수긍하고 자발적으로 일부를 배상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일단 유동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금융분쟁 배상절차는 금감원 검사 완료→ 불완전판매 혐의 입증→ 제재 통보→배상기준안 마련→금융사·소비자 분쟁조정 합의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분쟁조정으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금융사와 소비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법리를 다퉈야 한다.
현재 금감원은 금융사 현장 검사와 소비자 분쟁조정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사실상 검사를 통해 불완전판매 혐의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사의 자율배상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번 방안이 절차상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지난 사모펀드 사태 때 일부 금융사는 분쟁조정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율적인 사적화해를 통해 배상액을 선지급한 바 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은 젠투펀드에 대해 100% 선보상했다.
이 원장은 홍콩 ELS에 대해 최소 원금의 50% 비율을 선지급하고 나머지는 본격적인 분쟁조정을 통해 사후정산하는 방안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은행이 애초에 검토했던 20~40%의 차등 배상비율보다 높은 수준이다. DLF 사태 때 은행들은 투자 손실액의 40~80% 배상액을 결정한 바 있다.
은행들은 분쟁조정 기준안이 마련되면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나, 내부적으로는 고심에 휩싸였다.
사적화해를 통해 선제적으로 자율배상을 진행하면 향후 제재 심의 단계에서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은 이점이다. 실제로 사모펀드 사태로 인해 금융사 CEO들이 대거 중징계를 받았으나, 일부는 피해 구제 노력을 인정받아 경징계로 감경됐다. 반대로 절차상 불완전판매 혐의가 결론나지 않은 상태에서 배상을 추진하면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는 점은 부담이다. 은행과 증권사는 사기업에 속하는 만큼 주주와 채권자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향후 확정되는 손실 발생 규모와 당국에서 발표하는 가이드라인에 의거해 배상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금융사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당국의 배상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내부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배상은 상품에 가입한 고객의 연령대와 과거 투자 경험, 동일 상품 수익 경험 유무 등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앞서 DLF와 라임펀드 사태의 경우에도 금감원 분조위 기준을 준용해 차등 배상이 진행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불완전판매 배상 비율의 경우 40~80% 사이에서 이뤄졌다”며 “80%는 고령자이면서 투자 경험이 적은 가입자에게, 40%의 경우는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고 직업이 있으며 투자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가입자들에게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금융사에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해 금융사의 분쟁조정 수용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편면적 구속력이란 금융사가 2000만원 이하의 소액분쟁 한해서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법적 권한을 일컫는데, 헌법에 명시된 기업(금융사)의 재판받을 권리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도입이 잠시 거론된 적 있으나 현재는 전혀 검토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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