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세조종·사기 사건 몰린 남부지법
피고인 “코인은 증권 아냐” 주장…판사 ‘장고’
“형사재판, 민사와 달리 유추·확대해석 금지”
법조계 “재판·투자자 피해구제 장기화 우려”
[서울=뉴시스] 장한지 기자 =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피카코인 시세조종 등 가상화폐(가상자산) 범죄 사건이 집중된 서울남부지법의 판사들이 이른바 ‘코인의 증권성’ 유무 판단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검찰은 가상자산에 증권성이 있다고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법원 입장에선 자칫 형사재판에서 금지된 확장해석이나 유추해석을 범할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증권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수천억원대 피해에도 무죄나 적은 형량을 선고할 수밖에 없어 법원도 장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인이 증권이냐” 재판마다 되묻는 남부지법 판사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맹현무)는 지난 15일 가상자산 상장 대가로 수십억원대 ‘상장피(fee)’를 주고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거래소 임직원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신뢰를 상실했다”면서도 “가상자산 시장규모가 확대됐음에도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행위의 위법성에 대해 뚜렷하게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가상자산 시장규모가 확대되고 사기 사건이 늘고 있지만, 관련 법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가상자산에 증권성이 있는지에 대해 남부지법 판사들의 고민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상자산 피카코인 시세조종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당우증)와 테라·루나 폭락 사태 관련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합의14부(부장판사 장성훈)다.
출고일자 2023.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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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테라폼랩스 공동 창립자인 신현성(38)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 사진은 지난해 3월3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는 모습. 2023.03.30. kgb@newsis.com |
형사합의12부는 지난 7일 피카프로젝트 공동대표 송모(24)씨와 성모(45)씨의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등 혐의 공판에서 “피카코인이 증권이라고 한다면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금지 적용을 받을 수 있냐”고 검찰 측에 질의했다. 피고인 측이 ‘코인은 증권이 아니다’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최근 제정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가상자산을 증권과 유사하게 또는 동일하게 볼 수 있다는 전제에서 법률로 확실하게 한 건지, 아니면 그것과 동일하게 볼 수 없는데 규제가 필요해서 증권에 준해서 하는 건지 애매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피고인 측 변호인은 “피카코인 수사는 위법하고 이에 따른 기소는 부적법하다”며 “이 사건은 자본시장법상 가상자산이 증권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수사·기소돼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증거배제 가능성도 언급했다. 증거배제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에 따른 것으로, 수사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있다면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을 쓸 때 증거배제가 될지는 몰라도 증거조사까지 갈 가능성은 있겠다”고 언급했다.
‘테라·루나’의 증권성 유무를 놓고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의 견해 차이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 측은 첫 재판에서 “루나는 증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테라·루나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해 신 전 대표 등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상태다.
◆재판 장기화는 고민…’코인의 증권성’ 판례 정립 기회
출고일자 2022.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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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코인 및 테라코인 피해자들을 대리해 지난 2022년 5월19일 오후 엘케이비앤파트너스 김종복 변호사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테라폼랩스와 테라폼랩스 대표 및 테라폼랩스의 공동창업자 등 3명을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2022.05.19. chocrystal@newsis.com |
법조계는 법원이 자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느라 재판이 장기화하고, 이에 따라 피해자 구제도 늦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가상자산 관련 시세조종이나 사기 범죄의 경우 피해액이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데 자본시장법 위반 무죄가 선고되면 형량이 낮아져 재판부 입장에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법학회장인 이정엽 로집사 대표변호사는 “자본시장법(위반을) 심리하다 보면 재판이 하세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코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자본시장법에 포함시키려고 보니까 90%는 맞는데 딱 들어맞지가 않는 것”이라며 “코인 범죄를 통해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자본시장법이 아니라고 판결해버리려면 무죄가 선고되거나 형량이 줄어드니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에서는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도 재판이 장기화되는 이유 중 하나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형사재판은 확장해석이나 유추해석하면 안 되기 때문에 가상자산에 증권성이 있다고 못 박기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며 “민사재판에서는 어떻게든 양 당사자 간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손해배상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원 판례로 증권성 판단 기준이 정립될 수 있다는 기대의 시각도 나온다. 김현권 LKB앤파트너스 변호사는 “검찰은 어쨌든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상의 증권성이 있다고 확신해서 기소를 한 것”이라며 “아직 법조인들도 여러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맞다 틀리다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법원 판단이 하나둘씩 나오다 보면 서서히 정립될 것이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anz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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