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해외증권투자 100조원 넘어…테슬라·애플·고위험ETF 등에 편중
#한은 “공포지수 상승기에 오히려 투자 늘려…외환 변동성 키울 수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우리나라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증권(주식+채권) 투자가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지만, 특정 소수 종목이나 고위험 상장지수펀드(ETF)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와 상관없이 투자를 늘리는 등의 ‘공격적’ 성향이 향후 외환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 민간 해외증권 투자 중 개인 20%…4년새 비중 3배로
18일 한국은행의 ‘개인 투자자 해외증권 투자 특징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현재 개인의 해외투자 잔액은 771억달러(약 102조7천억원)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 이후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의 해외증권 투자 규모 자체가 급증한 데다, 2023년 말 인공지능(AI)·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 등으로 글로벌 주가가 올라 평가액이 더 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체 민간 부문(개인투자자·자산운용사·보험사·증권사·은행 등)의 해외증권 투자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말 7.3%에서 4년 만인 2023년 말 약 3배인 20%까지 뛰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개인 투자자가 기관 투자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투자 주체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증권 종류별로 나눠보면 개인의 해외주식 순투자 규모는 이미 2020∼2023년 중 기관투자자와 같은 수준에 이르렀고, 개인 해외채권 순투자액도 지난해 기관투자자의 43%까지 치솟았다.
◇ 소외공포·과잉확신 등에 쏠림·공격 투자…ETF투자 3년새 29배로
한은은 우리나라 개인 해외증권 투자 행태의 가장 큰 특징으로 금융시장 테마에 따라 ‘한 방향’으로 이뤄지는 점을 꼽았다.
2017년에는 조세제도 개편(한국·브라질 조세조약에 따라 브라질 국채 투자에 비과세 혜택) 등으로 브라질 채권에 몰렸고, 2020년 이후 미국 주식, 2023년 이후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에 따른 채권 가격 상승을 예상하며 미국 채권에 집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이런 ‘일방 투자’에 포모(FOMO;소외에 대한 공포) 심리, 과잉 확신(자신의 평가·예측 정확성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 군집행동(herding;다수 투자자가 일정 기간 같은 방향으로 매매하는 행태) 등의 행태적 편향(behavioral bias)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한국 개인 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에서는 특정 종목과 ETF 등에 대한 편중 현상도 두드러진다.
실제로 개인이 보유한 해외주식 가운데 상위 10개 종목의 비중은 2020년 말 39%(잔액 184억달러)에서 2023년 말 48%(366억달러)로 급등했다. 특히 상위 10개 종목은 대부분 테슬라·애플·엔비디아·구글 등 대형 기술주에 집중된 상태다.
미국 주가지수·국채 가격 변화 대비 3배의 변동성을 추종하는 ETF 투자액도 2020년 말 1억9천만달러에서 2023년 말 58억달러로 뛰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개인의 공격적 투자 성향이 강해졌다는 게 한은의 해석이다.
또 다른 한국 개인 투자자의 특징은 국내 기관 투자자와 달리 글로벌 금융 여건 변화와의 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한국 개미들은 세계 금융 환경이 바뀌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관 투자자는 주가가 하락하면서 공포 지수인 VIX가 오르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기에 해외증권 투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회수했다. VIX의 공식 명칭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olatility Index)로, 미국 주식시장의 단기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지수로 환산한 것이다. VIX 상승은 투자자의 불안 심리가 커졌다는 뜻이기 때문에, ‘공포 지수’로도 불린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는 오히려 VIX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던 코로나19 이후 기관 투자자와 달리 해외증권 투자를 크게 늘렸다.
◇ “올해 개인 해외증권 투자 한꺼번에 확대될 가능성…외환 수급에 부담”
한은은 이런 서학개미들의 투자 행태 특성이 자칫 외환 부문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양호한 미국 경기 여건, AI·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 등으로 미국 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개인의 대규모 해외주식투자가 재개되고,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 등에 채권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해외채권 투자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올해 중 국내 외환 수급이 수출 증가에 따른 경상수지 확대와 함께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나, 지난해 일시적으로 큰 폭 유입되었던 기업의 해외유보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개인투자자의 해외증권 투자가 한꺼번에 확대될 경우 외환 수급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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