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임소현 기자 = 올해 우리나라 과일·채소 등 농산물 가격 상승률이 주요국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정부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무제한 재정 투입으로 강수를 뒀다. 하지만 중동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환율 급등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되면서 물가 안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2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부처합동으로 농축수산물·석유류·가공식품·공산품 등 품목별 물가 동향 점검을 진행 중이다. 최근 급등한 국제유가에 편승한 가격인상 조치를 집중 점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달 초 국제유가는 기록을 다시 썼다. 지난 5일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 브렌트유 6월 인도분은 배럴당 91.17달러에 거래를 마감했고, 두바이유는 90.89달러로 나란히 90달러 선을 넘어섰다.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유(WTI)도 86.91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일정 시차를 두고 국내 유가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19일 기준 브렌트유는 87.29달러, 두바이유는 87.72달러, WTI는 83.14달러로 최고치보다는 소폭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에 미칠 여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원·달러 환율도 지난 16일 1400원선을 넘어서는 등 급등한 바 있다. 국제유가와 환율 급등은 물가 자극으로 이어진다. 실제 수입물가가 3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국내 물가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연말까지 물가는 2% 초반대의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정학적 위기로 불확실성이 있는 건 맞지만 상반기에 3%에서 위, 아래 근처에 머물다가 하반기로 가면서 2%대 초·중반으로 하향 안정화한다는 전망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중동 사태 관련 긴급회의를 여러 차례 개최하고 물가 점검을 위한 부처합동 회의에도 나섰다.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하기로 한 긴급안정자금을 통해 농수산물 소비자 가격 인하에도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한국의 과일·채소 가격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크게 올랐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올해 1~3월 월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0%로 영국(3.5%)·미국(3.3%)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고 밝혔다. 과일과 채소 가격만 따져봤을때 가격 오름세는 1위다.
식품 가격만큼 소비자 체감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이 에너지다. 에너지 관련 항목(전기·가스요금, 연료비 등)을 가중 평균해 산출한 에너지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프랑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식료품·에너지 항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이 안정적이라는 점을 들어 고물가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기재부 관계자는 “변동성이 큰 식료품 및 에너지 관련 품목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발생한 고물가를 상대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 자극 요인이 산적한 상황에서 야당은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재정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추경은 물가를 더욱 자극할 우려도 있는 만큼 기재부는 추경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여소야대 정국이 변수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물가 상황을 너무 낙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긴급안정자금이라는 것이 물가 충격 완화 효과는 있지만 정도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1000억, 2000억 정도 써서 큰 효과를 내기는 사실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야기 하는 것(물가 상황)보다 사람들의 체감 물가가 훨씬 더 높다고 생각이 된다”며 “외식·서비스 등의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는 모습이고 올해 또 오를 요인이 많이 있기 떄문에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유가와 환율 등 물가 자극 요인 속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에 힘을 모으겠다는 입장이다. 식품·정유업계 등을 향해 거듭 가격 인하 협력 요청도 지속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관계부처 및 기관간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조속한 시일내에 물가안정 흐름을 공고히 하고 국민 부담을 덜어 드릴 수 있도록 모든 정책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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