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오는 29일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가운데 여야 간에 큰 이견이 없는 금융법안들도 줄줄이 폐기될 운명에 처해 금융 안정과 규제에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예보)가 추진하는 ‘금융안정계정’ 설치를 골자로 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2년 가까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로선 21대 국회에서 법안 폐기가 유력한 상황이다.
금융안정계정은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회사들이 부실화되기 전에 예보가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된 후 금리가 급등하고 자산 가격이 크게 조정되는 이른바 ‘퍼펙트스톰(금융복합위기)’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해 추진됐다.
금융사에 부실이 발생하면 사후적 지원을 하는 현재 방식과 비교하면 금융권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산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부실 대응·정리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개정안은 예보의 예금보험기금에 금융안정계정을 설치하고 그 사용목적을 ‘금융제도의 안정성 유지를 위한 자금지원’으로 규정했다.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예금자보호법을 적용받는 다수 부보금융회사의 유동성이 경색되거나 재무구조 개선 또는 자본확충이 필요한 경우 예보는 부보금융회사와 지주회사에 금융안정계정을 활용한 자금지원을 할 수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적기에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사 부실을 사전 예방하는 금융안정계정이 서둘러 도입돼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부실화로 금융안정계정 설치의 필요성이 부각됐지만 지난 2022년 12월 법안 발의 이후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현행 예금보험료율(예보료율) 한도가 오는 8월 일몰을 앞둔 것과 관련해 일몰 기한 연장을 담은 예보법 개정안 역시 자동폐기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예보료율 한도의 일몰 기한을 오는 2027년 12월 말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보료란 예금보험제도 운영을 위해 예금보험공사(예보)가 금융회사로부터 걷는 기금이다. 금융회사가 파산 등의 사유로 예금 등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금융회사가 예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될 경우 예보가 금융회사를 대신해 보험금(한도 50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모든 부보금융회사(예금보험 적용 금융사)에 대한 보험료율 최고한도를 0.5%로 규정하고 시행령을 통해 금융회사별로 경영상황과 재무상황 등을 고려해 보험료율을 달리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 0.08%, 증권사 0.15%, 보험사 0.15%, 종금사 0.15%, 저축은행 0.4% 등의 업권별 예보료율이 적용되고 있다.
다만 예보료율 한도는 예금자보호법 부칙에 적용 기한이 있어 그동안 3년 단위로 연장해 왔다. 만일 일몰 도래시까지 적용 기한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1998년 당시 예금자보호법에서 정한 업권별 보험료율 한도를 적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다음 일몰 기한인 오는 8월 말을 넘기면 업권별 예보료율은 은행 0.05%, 증권 0.10%, 저축은행 0.15% 등으로 낮아지게 된다.
이 경우 예보료율이 크게 낮아져 금융사 부실에 대비한 예금보험기금의 안정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1998년 당시 보험료율이 적용될 경우 연간 예보료 수입은 7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2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재발의한다고 해도 상임위 구성에 걸리는 시간과 본회의 통과시까지 필요한 절차 등을 고려할 때 8월 일몰 전 처리는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카드사와 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에서 발생한 횡령·배임 등 금융사고와 관련해 기관 및 임직원에 대한 금융당국의 직접 제재 근거를 마련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도 폐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해당 업권법에 제재 근거가 있는 은행, 저축은행, 증권, 보험 등과 달리 여신전문금융업법에는 여전사 임직원이 횡령·배임을 하거나 대출을 부실하게 취급해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금융당국이 면직, 정직, 감봉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할 근거가 마려돼 있지 않다.
여전사는 업권 특성상 자금을 회사채 시장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예탁금과 같은 수신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횡령과 같은 대규모 사고는 대체로 고객 돈인 예탁금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수신 기능이 없는 여전사는 관련 제재 조항이 필요하지 않다고 봤던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롯데카드에서 발생한 105억원 규모의 대형 금융사고를 계기로 여전사 임직원의 횡령·배임 등과 관련한 법률상 제재 근거를 담은 여전업법 개정을 추진했다. 여전사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제재 근거 조항이 없는 상호금융권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의 제재 권한을 명시한 신용협동조합법 개정안도 국회에 함께 제출됐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가 오랜 기간 공전하면서 별다른 진척 없이 자동폐기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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