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리스크 추구 경향 때문에 피해 위기 감지 어려워
#’나 빼곤 다 주식 대박’ 생존편향에 조바심 더 커져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사연은 판박이다. ‘흙수저’ 사연의 부호나 연예인, 금융 전문가가 나타난다. 주식 등으로 돈을 벌자며 비공개 단체 대화방, 일명 ‘리딩방’으로 초대한다.
청산유수 강연과 종목 귀띔이 쏟아지고 거금을 투자한다. 뒤늦게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껴도 출구가 없다. 리딩방 ‘큰 손’은 연락이 끊기고 원금은 증발한다.
투자 리딩방 사기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범죄 패턴이 널리 알려졌지만, 피해자가 끊길 기색이 없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리딩방 피해 신고 건수는 작년 9월부터 올 3월까지 누적 3천235건에 달한다. 피해액은 약 2천970억원으로 3천억원에 육박한다.
리딩방 사기는 탐욕에 눈이 먼 극단적 경우에나 일어나는 일 같지만, 투자 업계 전문가들의 진단은 반대다. 수법이 뻔해도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유달리 욕심이 많거나 어리석은 이들만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 인간 마음의 근본적인 약점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리딩방 사기꾼이 노리는 대표적 맹점은 리스크(위험) 추구 성향이다. 리스크 추구는 모든 투자자가 가진 심리적 특성이다. 이 성향이 없으면 투자를 아예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기꾼들은 리딩방의 엉터리 투자를 수익을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리스크로 포장하고자 온갖 수를 쓴다. 이렇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는 가족이 만류해도 범죄 위험을 자각하기가 어렵다. ‘대박’의 길이 훤히 보인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람은 애초 수익이 난다고 보면 리스크를 축소하는 편향도 있다. 작심하고 온갖 가짜 정보로 이런 약점을 공략하면 설령 금융 전문가라도 수법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낙관적 사고’ 성향도 피해자의 발목을 잡는다.
사람은 통상 남의 피해 사례를 들어도 ‘나는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고 위안한다. 이는 삶의 활력을 위해 꼭 필요한 특성이지만, 리딩방에서는 올가미가 된다. 의심이 생기지만 ‘나는 잘될 것’이라고 긍정하며 계속 사기꾼의 말을 듣는 것이다.
여기에 집단 동조 현상까지 더해지면 문제가 더 커진다. 거짓 수익을 자랑하는 바람잡이의 말에 많은 이들이 함께 열광하는 리딩방의 분위기에서 낙관적 사고의 족쇄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도 피해자를 양산하는 요인이다. 이 편향은 살아 돌아온 것 또는 잘된 것만 보고 상황을 잘못 파악하는 특성이다.
투자자 커뮤니티에서 흔한 푸념이 ‘나 빼고 다들 주식 대박으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투자로 돈을 잃으면 침묵한다. 투자 실패 사연은 안 보이고 소수 성공 사례만 과도하게 접하기 쉽다. 이런 편향은 ‘나만 뒤처졌다’는 조바심을 키운다. 리딩방 참여 권유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소비자 심리 연구자인 서울과기대 안서원 교수는 “리딩방 사기 문제를 나와 무관한 남의 얘기로만 생각하는 것도 ‘낙관적 사고’ 성향에 해당한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기르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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