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지영 기자] 이더리움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올해 하반기 미국 증시에 상장할 예정이다. 비트코인에 이어 알트코인까지 제도권 금융에 입성하는 셈이다. 국내 역시 이를 따라 막아뒀던 가상자산 현물 ETF 출시를 허용할지 주목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3일(현지시간) 블랙록과 그레이스케일, 반에크, 피델리티 등 8개 자산운용사가 제출한 이더리움 현물 ETF 상장 심사요청서(19B-4)를 승인했다. SEC가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승인한 지 4개월 만이다.
다만 증권신고서(S-1)에 대한 승인이 남아 실제 거래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미국에서 ETF가 공식 출시되려면 19B-4와 S-1 등이 모두 승인돼야 한다. 앞서 비트코인 현물 ETF도 ’19B-4 승인→S-1 승인→현물 ETF 승인’ 순서로 진행됐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예상을 깬 결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더리움 현물 ETF 5월 승인이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트코인과 달리 스테이킹이 가능한 이더리움을 ‘증권’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테이킹은 일종의 예금 제도로, 보유한 이더리움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맡기면 보상을 돌려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SEC는 스테이킹 기능을 제외하는 조건으로 이번 승인을 허용했다. 이더리움 자체는 증권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현물 ETF 상장 가능성도 커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온다. 국내 금융 정책과 투자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적극적 모습이 국내 금융당국에도 자극제가 된다는 분석이다.
미국뿐만 아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비트코인 현물 ETF가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홍콩이 아시아 최초로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를 동시 승인하기도 했다.
글로벌 동향으로까지 번진 모습은 금융당국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전 세계 움직임을 역행할 명분 없이 계속해서 가상자산 현물 ETF 상장을 막는다면 한국 시장이 ‘갈라파고스’가 되는 꼴을 자처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금지했을 당시 “투자자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것은 시장 경제 원칙과 상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 가운데 가상자산에 적극적인 금감원장은 최근 SEC 등을 방문했다. 친(親) 가상자산 인물로 알려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SEC의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9일 전인 지난 14일(현지시간) 게리 겐슬러 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이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배경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내 가상자산 현물 ETF 출시와 공론화 등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이 올해 하반기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공론화를 예상한 상황에서 미국의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두 달도 안 남은 가상자산법 시행(7월 19일) 역시 긍정적 요소다.
이 원장은 지난 3월 한 인터뷰에서 “가상자산이 오는 7월 제도권에 들어오면서 신뢰가 쌓이면 하반기쯤 공론화의 장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장치도 마련됐다. 이번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은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친 가상자산 행보를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8500만 가상자산 투자자 표심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이를 지켜본 국내 역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예상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핵심 공약이었던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을 위해 현재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에 내달 중 유권해석을 재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금융당국은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자 “국내 증권사들이 해당 ETF 거래를 중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국내 거래를 금지한 바 있다. 해외 증시에 상장한 ETF 투자 자체를 막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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